8천 달러 건반과 2단 랙 — 이뮬레이터와 아카이 S 시리즈가 싸운 10년
지금 컨택트나 할리온을 열면 화면에 보이는 것들이 있습니다. 건반 위에 음이 구간별로 나뉘어 배치돼 있고, 세게 치면 다른 샘플이 나오게 층이 쌓여 있고, 파형에는 루프 시작점과 끝점이 찍혀 있습니다. 여러 개를 묶어 하나의 악기로 저장하고요.
이 화면 구성은 누가 정한 걸까요. 소프트웨어 회사들이 각자 알아서 만든 것 같지만, 실은 1980년대 후반에 두 회사가 10년 동안 싸우면서 정리된 결과입니다. 한쪽은 캘리포니아의 E-mu 시스템즈, 다른 쪽은 도쿄의 아카이였어요.
그리고 이 싸움은 흔한 이야기처럼 "성능 좋은 쪽이 이겼다"로 끝나지 않습니다. 두 회사는 애초에 서로 다른 질문에 답하고 있었거든요. 결과도 그래서 이상하게 갈립니다. 한쪽은 소리를 남겼고, 다른 쪽은 포맷을 남겼습니다.

페어라이트 CMI. 이 기계의 가격표가 모든 일의 출발점이었습니다 / 출처: Peter Wielk / CC BY-SA 4.0 via Wikimedia Commons
① 1980년, 자기 물건을 팔러 갔다가 남의 물건을 봤다 💸
E-mu 시스템즈는 1971년 산타크루즈에서 시작한 회사입니다. 처음엔 모듈러 신디사이저를 만들었는데, 돈은 다른 데서 벌었어요. 1973년에 특허를 낸 디지털 스캐닝 건반 기술을 다른 회사에 라이선스한 겁니다. 오버하임의 포 보이스에도 들어갔고, 데이브 스미스가 만든 프로펫-5에도 들어갔습니다. 즉 E-mu는 남의 신디사이저가 팔릴 때마다 로열티를 받는 회사였어요.
그 로열티로 자기 이름을 건 악기를 만듭니다. 1980년에 공개한 오디티(Audity) 라는 대형 신디사이저인데, 가격이 69,200달러였습니다. 샘플러가 아니라 순수 신디사이저였고, 너무 비싸서 결국 딱 한 대 만들어지고 끝났습니다.
창업자 스콧 웨지와 데이브 로섬은 이 물건을 들고 그해 AES 컨벤션에 나갑니다. 그런데 정작 눈에 들어온 건 자기 부스가 아니라 다른 부스였어요. 페어라이트 CMI와 린 LM-1. 페어라이트는 녹음한 소리를 건반으로 연주하는 샘플러였고, 가격이 3만 달러였습니다. 신클라비어는 더 비쌌고요.

신클라비어. 페어라이트보다 비쌌고, 대학과 대형 스튜디오에만 있던 물건입니다 / 출처: Jean-Bernard EMOND /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6만9천 달러를 불렀다가 한 대도 못 판 사람들 눈에, 3만 달러에 팔리고 있는 샘플러가 어떻게 보였을지는 짐작이 갑니다. 두 사람은 거기서 판단을 내립니다. 이 기술은 우리도 있다. 훨씬 싸게 만들 수 있다.
1981년 이뮬레이터가 나옵니다. 정가 약 7,900달러. 3만 달러짜리 옆에 놓인 8천 달러는 파격이었어요. 5.25인치 플로피를 쓰는 건반형 샘플러였고, 자기가 녹음한 소리를 디스크에 저장해 남과 주고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뮬레이터 1호기. 8천 달러짜리 건반형 샘플러였습니다 / 출처: Matt Friedman / CC BY 3.0 via Wikimedia Commons
1호기는 스티비 원더가 가져갔습니다. 원래 캡틴 앤 테닐의 대릴 드래곤에게 약속돼 있었는데, 1981년 NAMM에서 원더가 이 기계를 극찬하자 순서가 바뀌었다고 합니다. 뉴 오더, 탠저린 드림, 제네시스의 토니 뱅크스가 초기 사용자였고, 다섯 번째 기계는 더 레지던츠에게 갔어요. 뱅겔리스는 런던 네모 스튜디오에 한 대를 두고 《블레이드 러너》 작업에 썼습니다.
▶ New Order — Blue Monday
다 합쳐서 약 500대가 팔리고 1984년 초에 단종됩니다. 적어 보이지만 이 500대가 한 일이 있어요. "샘플러는 스튜디오가 아니라 개인이 살 수 있는 물건"이라는 감각을 만들었습니다.
이 500대를 팔면서 E-mu는 한 가지를 더 배웁니다. 기계를 산 사람들이 정작 어려워한 건 녹음이 아니라 쓸 만한 소리를 구하는 일이었다는 것. 다음 기계는 그 지점을 겨냥해서 나옵니다.
② 이뮬레이터가 판 건 기계가 아니라 디스크였다 💿
1984년 이뮬레이터 II가 나옵니다. 기본형 7,995달러, 메모리를 늘린 플러스 모델이 9,995달러. 3만 달러짜리 페어라이트 시리즈 II 옆에서는 여전히 "싼 쪽"이었습니다.
스펙만 보면 이상한 기계예요. 여전히 8비트입니다. 그런데 소리가 좋았습니다. 이유는 세 가지가 겹쳐서예요.
🔹 컴팬딩 DAC — 그냥 8비트로 자르는 게 아니라 뮤(μ)-255 방식으로 눌렀다가 펴는 구조를 씁니다. 8비트치고 다이내믹 레인지가 넓어집니다
🔹 27.7kHz 가변 샘플레이트 — 분주(divider) 방식이라 음을 내릴수록 샘플레이트도 같이 내려갑니다. 저음으로 갈수록 소리가 뭉개지는데, 이게 결함이 아니라 특징이 됐어요
🔹 SSM2045 아날로그 필터 — 24dB/oct 4폴 레조넌트 로우패스가 출력단에 붙어 있습니다. 디지털 샘플을 아날로그 신디사이저처럼 주무를 수 있게 된 겁니다
이 세 가지의 합이 지금도 사람들이 돈을 주고 사는 "EII 소리"입니다. 디지털 기계인데 소리가 따뜻하다는 말이 나오는 건 마지막 단의 아날로그 필터 때문이에요.
▶ E-mu Emulator II Sampler — sound library
그런데 EII가 실제로 판 건 기계가 아니었습니다. 디스크였어요.
E-mu는 순정 라이브러리와 서드파티 라이브러리를 계속 찍어냈습니다. 오케스트라, 관악, 민속 악기. 그중 몇 개가 그대로 1980년대 사운드가 됩니다. 샤쿠하치 샘플은 피터 가브리엘의 〈Sledgehammer〉 첫 소절에 들어갔고,
▶ Peter Gabriel — Sledgehammer
몇 해 뒤 에니그마의 《MCMXC a.D.》에서 다시 등장합니다.
▶ Enigma — Sadeness Part I
마르카토 스트링은 펫샵보이즈의 〈West End Girls〉로 갔습니다. 닐 테넌트 말로는 그 곡의 악기 소리가 전부 이뮬레이터 II였다고 해요.
▶ Pet Shop Boys — West End Girls
여기서 재미있는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EII 라이브러리의 상당수는 페어라이트와 신클라비어를 샘플링해서 만든 것이었어요. 페어라이트의 합창 샘플 "Sarrar/Arr1"이 E-mu 라이브러리에서는 "DigiVcs"라는 이름으로 들어 있습니다. 3만 달러짜리 기계의 소리를 8천 달러짜리 기계에 담아 파는 구조였던 거죠. 샘플러의 역사가 처음부터 이런 식이었다는 게 좀 웃깁니다.
EII 사용자 목록도 화려합니다. 디페시 모드, 뉴 오더, 데이비드 보위, 폴 매카트니, 허비 행콕, 장미셸 자르, ABC, 프론트 242. 영화 쪽에서는 브래드 피델이 《터미네이터》 스코어에 썼고, 존 카펜터는 1980년대 자기 영화 거의 전부에 썼습니다. 《페리스의 해방》에서 주인공이 아픈 척하려고 기침 소리를 재생하는 그 건반도 EII예요.

이뮬레이터 II+. 건반이 달려 있고, 옆구리에 플로피 드라이브가 있습니다 / 출처: Mojosynths /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여기까지가 1980년대 중반의 정답이었습니다. 건반이 달린 비싼 본체를 팔고, 그 위에 디스크를 계속 팔아서 먹고사는 모델. 잘 굴러갔고, 아무도 이걸 의심하지 않았어요.
한편 같은 시기에, 완전히 다른 전제로 샘플러를 만들던 회사가 있었습니다. 애초에 악기를 만들 생각이 없던 회사였습니다.
③ 1985년, 아카이가 다른 질문을 들고 왔다 🎛️
아카이는 1929년 도쿄에서 시작한 회사입니다. 1960~70년대에는 릴 투 릴 테이프 레코더로 알려진 오디오 업체였어요. 1984년에 악기 부문 아카이 프로페셔널이 생깁니다.
첫 제품은 샘플러가 아니라 MG1212라는 12트랙 레코더였습니다. VHS 비슷한 카트리지에 12트랙을 녹음하는 물건이었어요. 이 출발점이 중요합니다. 아카이는 악기 회사가 아니라 녹음 기재 회사로 이 바닥에 들어왔습니다.
1985년 S612가 나옵니다. 스펙을 보면 초라해요.
🔹 12비트, 19인치 랙 2U, 검은색 본체
🔹 샘플은 한 번에 하나만 들어갑니다
🔹 디스크 드라이브가 본체에 없고, 2.8인치 퀵디스크를 쓰는 별도 드라이브를 물려야 합니다
🔹 최고 음질(32kHz)에서 최대 샘플 길이 1초

아카이 S612. 2U 랙에 샘플 하나. 여기서 시작했습니다 / 출처: Angie Schwendemann / Shoulder-synth / CC BY 2.0 via Wikimedia Commons
1초짜리 샘플 하나. 같은 해 이뮬레이터 II는 8보이스 멀티팀브럴에 20MB 하드디스크 옵션까지 있었습니다. 성능으로는 비교가 안 됩니다.
그런데 방향이 달랐어요. E-mu는 악기를 만들고 있었고, 아카이는 부품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건반도 없고 라이브러리도 없습니다. 랙에 꽂고, 미디로 받고, 필요한 소리를 직접 넣어 쓰는 물건이었어요.
질문이 달랐다는 건 이런 뜻입니다. E-mu가 물은 건 "이 소리를 어떻게 하면 진짜처럼 들리게 할까"였고, 아카이가 물은 건 "이 상자를 어떻게 하면 스튜디오가 한 대 더 살 수 있게 할까"였습니다.
둘째 질문은 성능 경쟁이 아니라 대수 경쟁입니다. 그래서 아카이는 S612의 초라한 스펙을 부끄러워하는 대신, 같은 방향으로 한 발만 더 나갔어요.
④ 12비트가 남긴 소리 🔊
1986년 S900이 나오면서 판이 바뀝니다.
🔹 12비트 8보이스, 8파트 멀티팀브럴
🔹 샘플레이트 7.5kHz~40kHz 가변 — 7.5kHz로 내리면 최대 63초까지 들어갑니다
🔹 메모리 896KB(샘플용 768KB), 디스크 드라이브 내장
🔹 펌웨어 1.2부터 플로피로 OS를 업데이트할 수 있게 됩니다
마지막 항목이 은근히 큽니다. 기계를 산 뒤에도 기능이 늘어난다는 뜻이거든요. 아카이의 최종 디스크 배포 버전은 4.0이었는데, 심지어 2026년 7월에 서드파티가 만든 비공식 OS(SUPER4.0.2)가 나왔습니다. 1986년 기계에 아직도 펌웨어가 나오고 있어요.
S900은 영국과 미국 스튜디오에 빠르게 퍼집니다. 사용자 목록이 장르를 가리지 않아요.
45 King은 이 기계로 만든 곡에 아예 기계 이름을 붙였습니다. 〈The 900 Number〉.
▶ The 45 King & Louie — The 900 Number
디트로이트 테크노의 후안 앳킨스, 퍼블릭 에너미의 사운드를 만든 밤 스쿼드, 프린스 폴, KLF, 프론트 242, 블랙 박스가 씁니다. 그리고 전혀 다른 쪽에서 에냐의 《Watermark》에도 S900이 들어가 있어요. 켈틱 앰비언트와 하드코어 힙합이 같은 랙 기계를 쓰고 있었던 겁니다.
1988년 S950이 나옵니다. 12비트를 그대로 둔 채 최고 샘플레이트를 48kHz로 올리고, 상위 기종의 타임스트레치를 가져옵니다. 팻보이 슬림은 지금도 S950 두 대를 거의 전용으로 쓰고 있어요. 〈Praise You〉가 그 결과물입니다.
▶ Fatboy Slim — Praise You

아카이 S950. 12비트를 그대로 두고 위만 올린 기계입니다 / 출처: Michelle Fequiere-Weston / CC BY 2.0 via Wikimedia Commons
S900 계열에만 있고 상위 기종에는 없는 기능도 하나 있습니다. 루프를 앞뒤로 왕복시키는 것. 순방향 루프만 되는 기계와 왕복 루프가 되는 기계는 패드나 지속음을 만들 때 결과가 다릅니다. 나중 기계가 늘 더 나은 건 아니에요.
▶ How to use the Akai S900 / S950 Sampler — Complete Tutorial

아카이 S900. 건반도 화면도 없이, 랙에 꽂는 상자였습니다 / 출처: Angie Schwendeman / CC BY 2.0 via Wikimedia Commons
1초짜리 샘플 하나로 시작한 회사가 3년 만에 스튜디오 표준을 가져간 겁니다. 아래에서 조용히 올라온 셈인데, 그동안 위에 있던 쪽은 뭘 하고 있었을까요.
⑤ 1987년, 이뮬레이터 III는 옳았지만 졌다 📉
E-mu도 손 놓고 있진 않았습니다. 1987년 이뮬레이터 III를 내놓는데, 스펙이 완벽해요.
🔹 16비트 44.1kHz 스테레오 — CD와 같은 규격입니다. 1987년에요
🔹 4MB 또는 8MB 메모리
🔹 CEM 필터 칩으로 바꿔 출력 잡음까지 줄였습니다

이뮬레이터 III. 1987년에 이미 16비트 44.1kHz 스테레오였습니다 / 출처: Matt Friedman / CC BY 3.0 via Wikimedia Commons
기술적으로는 흠잡을 데가 없었습니다. 문제는 가격이었어요. 4MB 모델 12,695달러, 8MB 모델 15,195달러.
같은 시점에 아카이·엔소닉·카시오가 2천 달러 밑에서 샘플러를 팔고 있었습니다. E-mu가 1만 달러대를 받을 수 있었던 건 대안이 3만~20만 달러짜리 페어라이트와 7만5천~50만 달러짜리 신클라비어뿐이던 시절의 논리였어요. 그런데 그 시절은 이미 끝나 있었습니다. E-mu는 자기 아래쪽에 시장이 생겼다는 걸 늦게 알아차렸습니다.

엔소닉 미라지. 1985년에 1,695달러였습니다. 아래쪽 시장은 이렇게 생겼어요 / 출처: emily przybylinski / CC BY 2.0 via Wikimedia Commons
EIII가 안 팔린 건 성능 때문이 아니라 누구와 비교당하는지가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1984년의 EII는 페어라이트와 비교돼서 "싼 기계"였고, 1987년의 EIII는 S900과 비교돼서 "여섯 배 비싼 기계"였어요. 같은 회사가 같은 전략을 썼는데 결과가 뒤집힌 겁니다.
그래도 EIII를 쓴 사람들은 있습니다. 제네시스의 토니 뱅크스, 808 스테이트, 그리고 디페시 모드가 1990년 《Violator》에 썼어요.
이듬해, 아카이가 이 가격표에 정면으로 답을 냅니다.
⑥ 1988년, S1000이 판을 끝냈다 🏁
1988년, 아카이가 S1000을 냅니다. 가격 5,999달러.
🔹 16비트 44.1kHz 스테레오 — EIII와 같은 규격
🔹 내부 처리는 24비트
🔹 2MB 메모리(나중에 8MB, 1990년 S1100용 확장 보드가 나오면서 32MB까지)
🔹 18dB/oct 디지털 필터, 이펙트 센드·리턴
🔹 그리고 SCSI
EIII의 절반 이하 가격에 같은 음질이 나왔습니다. S1000은 S900을 즉시 밀어내고 스튜디오 표준이 됩니다. 파생 모델도 줄줄이 나왔어요. 40MB 하드디스크를 넣은 S1000HD, 건반형 S1000KB, 재생 전용인 S1000PB. 1990년에는 이펙트를 내장한 S1100이 4,999달러에 나옵니다. 후속 기종이 전작보다 싸게 나온 겁니다.
▶ What was revolutionary about the Akai S1000 sampler?
같은 해 S950이 아래쪽을 지키고 S1000이 위쪽을 잡았습니다. 위아래를 동시에 막은 배치였어요. E-mu가 들어갈 틈이 없었습니다.

아카이 S1000. 1990년대 스튜디오 사진에 거의 반드시 들어 있는 기계입니다 / 출처: DG3YEV / Clusternote / CC BY-SA 4.0 via Wikimedia Commons
⑦ S1000과 아타리 ST, 그리고 깨진 소리가 장르가 된 순간 🇬🇧
S1000이 실제로 바꾼 건 스튜디오가 아니라 방이었습니다.
영국에서 S1000 한 대와 아타리 ST 한 대만 있으면 곡이 나왔어요. ST가 시퀀스를 돌리고 S1000이 소리를 내는 조합입니다. 이게 정글과 스피드 개러지를 만들었습니다. 스튜디오 예약 없이, 엔지니어 없이, 침실에서요.
그리고 이 기계가 남긴 가장 유명한 물건은 성능이 아니라 결함이었습니다.
OS 2.0에 타임스트레치가 들어갑니다. 길이와 피치를 따로 바꾸는 기능인데, 1988년 하드웨어로 하는 일이라 결과가 매끄러울 리가 없었어요. 소리가 잘게 끊기고 금속성 잔물결이 생깁니다. 그런데 그 소리를 사람들이 일부러 쓰기 시작했습니다.
▶ Josh Wink — Higher State Of Consciousness
▶ Double 99 — RIP Groove
아카이가 "이건 어쩔 수 없는 한계입니다"라고 매뉴얼에 적었을 법한 현상이, 두 장르를 대표하는 소리가 됐습니다.
S1000 사용자 목록은 거의 1990년대 그 자체예요. 마이클 잭슨 〈Black or White〉, 나인 인치 네일스 〈Closer〉(S1100), 포티스헤드 《Dummy》, 마이 블러디 발렌타인 《Loveless》. 여기에 프라이멀 스크림, 프로디지, 케미컬 브라더스, 보즈 오브 캐나다, 개비지, 스톤 로지스가 더 붙습니다.
▶ The Stone Roses — Fools Gold
같은 기계에 대한 평가가 정반대로 갈리는 것도 재미있습니다. 보즈 오브 캐나다의 마이클 샌디슨은 발매 10년 뒤 인터뷰에서 "샘플러가 대여섯 대 있지만 제일 좋아하는 건 여전히 S1000이다. 이제 화면이 다 바래서 거의 안 보이는데도 속속들이 알고 있어서 제일 즉흥적으로 쓸 수 있다"고 했어요. 반면 포티스헤드의 엔지니어 데이브 맥도널드는 같은 기계를 조작 방식 때문에 "끔찍한 물건"이라고 불렀습니다.
▶ Akai S1000 | Old School Sampling
조작감이 끔찍하다는 말을 들으면서도 이 기계가 표준 자리를 지켰다는 건, 사람들이 S1000을 고른 이유가 쓰기 편해서도 소리가 좋아서도 아니었다는 뜻입니다. 그럼 뭐였을까요. 여기서부터가 이 싸움의 진짜 결론입니다.
⑧ 전쟁의 결과 — 소리와 포맷이 갈라졌다 🧬
승부가 갈린 지점은 음질이 아니었습니다. SCSI 포트였어요.
S1000이 SCSI로 CD-ROM 드라이브를 물릴 수 있게 되자, 샘플 회사들이 CD-ROM으로 라이브러리를 팔기 시작합니다. 문제는 어느 포맷으로 찍느냐였는데, 스튜디오에 제일 많이 깔린 기계가 S1000이었으니 답이 정해져 있었어요. 아카이 포맷이 사실상의 유통 표준이 됩니다.
이게 왜 결정적이냐면, 하드웨어가 죽은 뒤에도 포맷은 살아남았기 때문입니다. 1990년대 말부터 소프트웨어 샘플러가 하드웨어를 대체하는데, 그 소프트웨어들이 팔리려면 고객이 이미 갖고 있는 라이브러리를 읽을 수 있어야 했습니다. 그 라이브러리가 아카이 포맷이었어요. 그래서 소프트 샘플러들은 하나같이 아카이 디스크 임포트 기능을 달고 나왔습니다. 지금도 옛날 아카이 CD-ROM 이미지를 변환해 쓰는 사람들이 있고요.
E-mu는 반대 방향으로 갔습니다. 1993년 크리에이티브 테크놀로지에 인수됩니다. 그리고 회사의 샘플링 기술은 악기가 아니라 PC 사운드카드 안으로 들어가요. EMU8000 칩이 사운드블래스터 AWE32에 실립니다. 1990년대에 PC로 미디를 재생할 때 나던 그 소리가 이뮬레이터를 만든 회사의 물건이었던 겁니다. 1998년에는 크리에이티브가 먼저 사들였던 엔소닉과 합쳐지고요. 라이벌 두 회사가 같은 우산 아래서 하나가 된 셈입니다.

사운드블래스터 AWE32. 이 카드 안에 이뮬레이터를 만든 회사의 칩이 들어 있습니다 / 출처: Swaaye /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샘플러 쪽에서도 E-mu는 계속 싸웠습니다. 1994년 EOS를 쓰는 이뮬레이터 IV, 1995년 e64, 1996년 E4K, 1997년 E4X, 1999년 울트라 시리즈. 장르별 음원 모듈(오빗·플래닛 팻·카르나발)도 냈고요. 하지만 2002년 이뮬레이터 라인이 단종됩니다.
아카이도 끝이 좋진 않았습니다. S3000 시리즈(1993), S5000·S6000(1998), Z4·Z8까지 갔지만, 본사 아카이 홀딩스는 2000년에 부도가 납니다. 악기 부문은 1999년에 이미 분리돼 있었고, 2005년에 인수돼 지금은 inMusic 소속이에요. 아카이 프로페셔널이라는 이름은 남았지만, 그 이름을 쓰는 회사는 1986년의 그 회사가 아닙니다.

아카이 S3000XL. 1990년대 중반 랙의 기본값이었습니다 / 출처: Koffermejia / CC BY-SA 4.0 via Wikimedia Commons

아카이 S6000. 조작부를 통째로 떼어낼 수 있는 구조였습니다 / 출처: choking sun / CC BY 2.0 via Wikimedia Commons
⑨ 지금 당신이 쓰는 샘플러는 어느 쪽 후손인가 🧭
두 회사가 다 없어졌는데도 이 이야기가 남는 건, 우리가 매일 여는 화면에 둘의 흔적이 나뉘어 들어가 있기 때문입니다.
🔹 작업 순서는 아카이가 남겼습니다 — 멀티샘플을 키그룹에 배치하고, 벨로시티 레이어를 쌓고, 루프 포인트를 찍고, 여러 개를 프로그램으로 묶는 것. 컨택트에서 하는 일이 그대로 S1000의 화면 구성입니다. 라이브러리를 포맷 단위로 사고파는 문화도 여기서 왔고요
🔹 음색 감각은 E-mu가 남겼습니다 — 소리 자체를 상품으로 판다는 발상, 그리고 디지털 샘플 뒤에 아날로그 필터를 붙여 다듬는다는 발상. 지금 소프트 샘플러에 멀쩡히 레조넌트 필터가 달려 있는 이유예요
그래서 요즘 라이브러리를 고를 때 이 역사가 실제로 보입니다. "키스위치로 아티큘레이션을 바꾼다"는 건 아카이식 프로그램 구조의 후손이고, "이 라이브러리는 캐릭터가 있다"는 말은 E-mu식 음색 상품화의 후손입니다. 둘 다 1980년대에 두 회사가 서로를 이기려다 만들어낸 습관이에요.
하나 더. 이 전쟁에서 진짜로 이긴 쪽은 싸게 만든 쪽이 아니라 남들이 자기 포맷을 쓰게 만든 쪽이었습니다. 아카이는 기계를 싸게 팔아서 시장을 먹었지만, 기계가 사라진 뒤에도 남은 건 가격이 아니라 파일 구조였어요. 지금 벌어지는 플러그인 포맷 경쟁이나 샘플 팩 포맷 이야기를 볼 때 한 번쯤 떠올려볼 만한 대목입니다.
자주 나오는 질문
Q. 12비트·8비트 샘플러 소리를 지금 흉내 내려면 뭘 만져야 하나요?
A. 비트뎁스를 줄이는 것만으로는 잘 안 됩니다. 그 기계들의 특징은 비트보다 샘플레이트와 출력단에 있었어요. S900 계열이라면 샘플레이트를 낮춰(원래 7.5~40kHz 사이에서 골랐습니다) 고역을 날리고, 그 뒤에 나오는 앨리어싱을 지우지 말고 남기는 쪽이 비슷합니다. EII 계열이라면 반대로 컴팬딩의 눌린 느낌과 24dB/oct 레조넌트 로우패스가 핵심이고요. 요약하면 비트 크러셔가 아니라 샘플레이트 리듀서와 필터입니다.
Q. 빈티지 아카이를 지금 사는 게 의미가 있나요?
A. 소리만 원한다면 대부분 플러그인으로 충분합니다. 다만 저 기계들에는 재현하기 어려운 게 하나 있어요. 메모리가 작다는 것. 768KB 안에서 곡을 만들려면 샘플을 짧게 자르고 루프를 잡고 음을 아껴 쓰게 됩니다. 그 제약이 결과물의 성격을 만들었어요. 무제한 램을 쓰면서 "S950 느낌"을 내려는 건 사실 앞뒤가 바뀐 이야기입니다. 기계를 사는 대신 용량 한도를 스스로 정해놓고 작업해보는 것이 더 실질적일 수 있습니다.
Q. 타임스트레치가 깨지는 소리를 일부러 쓰고 싶으면요?
A. 요즘 DAW의 스트레치 알고리즘 중 품질이 낮은 쪽(에이블톤의 Texture나 Beats 모드 같은)을 일부러 고르고, 그레인 크기를 크게 잡으면 방향이 비슷해집니다. 좋은 알고리즘으로 늘린 다음 따로 망가뜨리는 것보다, 처음부터 거친 알고리즘으로 늘리는 쪽이 그 시절 소리에 가깝습니다.
Q. 그 시절 샘플러가 만든 습관 중에 지금도 지킬 만한 게 있을까요?
A. 소리를 고를 때 그 자리에서 결정하는 것입니다. 하드웨어 샘플러는 나중에 음색을 바꾸려면 다시 녹음해서 다시 로드해야 했어요. 그래서 고를 때 진지하게 골랐습니다. 지금은 언제든 바꿀 수 있으니 결정을 미루게 되는데, 미룬 결정은 끝까지 안 내려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마무리
처음 질문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소프트 샘플러의 화면 구성은 누가 정했을까요.
E-mu는 "샘플러는 악기다"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건반을 달고 라이브러리를 팔았습니다. 그 판단은 음악을 바꿨습니다. 〈West End Girls〉의 스트링도, 〈Sledgehammer〉의 샤쿠하치도 그 판단에서 나왔어요.
아카이는 "샘플러는 스튜디오 기재다"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건반을 떼고 랙에 넣고 가격을 내렸습니다. 그 판단은 누가 음악을 만들 수 있는지를 바꿨습니다. 아타리 ST와 S1000이 놓인 영국 침실에서 나온 장르들이 그 결과입니다.
둘 다 맞았고 둘 다 졌습니다. E-mu의 샘플러는 2002년에 끝났고, 아카이 본사는 2000년에 없어졌어요. 그런데 오늘 컨택트를 열면 두 회사가 다 살아 있습니다. 키그룹과 루프 포인트에 아카이가, 필터 노브와 "이 라이브러리 캐릭터"라는 말에 E-mu가 남아 있어요.
기계는 없어져도 그 기계가 사람들에게 시킨 작업 순서는 남습니다. 지금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화면도 누군가가 40년 전에 내린 판단의 결과라는 걸 알고 나면, 그 화면을 조금 다르게 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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