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W 켰는데 막막하다면? 미디 입력 기초 3가지 (피아노롤·벨로시티·퀀타이즈)
DAW를 골랐다면 이제 진짜 문제가 남았습니다. 켰는데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거요.
빈 화면에 격자만 잔뜩 그려져 있고, 어디를 눌러야 소리가 나는지도 모르겠고. 여기서 창을 닫아버리는 분이 정말 많습니다.
오늘 다룰 건 딱 세 가지입니다. 이 셋만 알면 오늘 안에 여덟 마디짜리 드럼 패턴을 만들 수 있어요. 어떤 DAW를 쓰든 똑같이 통합니다.
① 미디가 대체 뭔가요 🎹
먼저 이 개념부터 잡고 가야 합니다. 이걸 모르고 시작하면 계속 헷갈립니다.
🔹 미디(MIDI)는 소리가 아닙니다
MIDI는 Musical Instrument Digital Interface의 약자로, 악기끼리 연주 정보를 주고받기 위해 1983년에 만들어진 규격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정보라는 단어예요.
미디 데이터에는 소리가 하나도 들어있지 않습니다. 대신 이런 내용만 적혀 있어요.
・어떤 음을 (도, 레, 미…)
・언제 (몇 번째 박자에)
・얼마나 세게 (강하게? 약하게?)
・얼마나 길게 (짧게 툭? 길게 늘여서?)
악보를 떠올리면 정확합니다. 악보 종이에서는 소리가 안 나죠. 연주자가 있어야 소리가 납니다. 미디도 똑같아요. 미디는 악보, 가상악기는 연주자입니다.
🔹 오디오와 뭐가 다른가요
오디오는 이미 녹음된 소리 그 자체입니다. 노래를 부르고 녹음하면 오디오가 되죠. 한번 녹음되면 음정을 바꾸거나 악기를 갈아치우는 게 어렵습니다.
미디는 지시서라서 나중에 얼마든지 고칠 수 있어요. 피아노로 찍어놓은 멜로디를 나중에 바이올린으로 바꿔도 됩니다. 지시서는 그대로고 연주자만 교체하는 거니까요. 음 하나가 틀렸으면 그 음만 위아래로 끌어올리면 끝입니다.
이 자유로움이 미디로 작업하는 가장 큰 이유입니다.
② 피아노롤 읽는 법 📐
미디를 입력하는 화면을 피아노롤(Piano Roll)이라고 부릅니다. 이름의 유래는 자동 피아노예요. 예전에 구멍 뚫린 두루마리 종이를 넣으면 저절로 연주되는 피아노가 있었는데, 그 종이 모양을 그대로 화면에 옮겨온 겁니다.
처음 보면 복잡해 보이지만 축은 두 개뿐입니다.
🔹 세로축 = 음높이
화면 왼쪽에 피아노 건반이 세로로 누워 있습니다. 위로 갈수록 높은 음, 아래로 갈수록 낮은 음이에요. 노트를 위아래로 끌면 음정이 바뀝니다.
🔹 가로축 = 시간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시간이 흐릅니다. 노트를 오른쪽으로 끌면 더 나중에 소리가 나고, 옆으로 늘이면 길게 지속됩니다.
🔹 격자 = 박자
화면에 촘촘히 그려진 세로선이 박자입니다. 굵은 선이 한 마디의 시작, 그 사이의 가는 선들이 박자를 쪼갠 단위예요.
여기서 나오는 용어가 그리드(grid) 입니다. 이 격자의 촘촘함을 정하는 설정인데, DAW 상단에 1/4, 1/8, 1/16 같은 숫자로 표시돼 있습니다.
・1/4 = 4분음표 단위. 한 마디에 4칸
・1/8 = 8분음표 단위. 한 마디에 8칸
・1/16 = 16분음표 단위. 한 마디에 16칸
숫자가 커질수록 격자가 촘촘해지고, 더 잘게 쪼갠 리듬을 찍을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1/16으로 두고 시작하면 대부분의 상황이 커버됩니다.
그리고 스냅(snap) 이라는 기능이 켜져 있으면 노트가 격자에 착 달라붙습니다. 초보자에게는 켜두는 게 훨씬 편해요. 손으로 대충 찍어도 박자가 맞아떨어집니다.
③ 첫 노트를 찍어봅시다 ✏️
개념은 이 정도면 충분합니다. 이제 손을 움직여봅시다.
🔹 순서는 이렇습니다
1. 새 미디 트랙을 만든다
2. 가상악기를 하나 올린다 (피아노나 드럼 아무거나)
3. 빈 구간을 더블클릭해서 미디 클립을 만든다
4. 클립을 더블클릭하면 피아노롤이 열린다
5. 연필 도구로 격자를 클릭한다 → 노트 생성
이게 끝입니다. 정말로요.
🔹 처음에 헷갈리는 것들
소리가 안 난다면 대부분 가상악기를 안 올렸거나, 트랙이 음소거되어 있습니다. 미디만 찍고 악기가 없으면 지시서만 있고 연주자가 없는 상태라 당연히 조용합니다.
노트가 격자에 안 붙는다면 스냅이 꺼져 있는 겁니다.
④ 벨로시티 — 기계와 사람을 가르는 것 💪
여기서부터가 진짜입니다. 초보자의 미디가 "기계 같다"는 소리를 듣는 이유는 거의 대부분 이것 때문이에요.
🔹 벨로시티가 뭔가요
벨로시티(Velocity)는 건반을 누른 세기를 뜻합니다. 0부터 127까지의 숫자로 기록돼요. 0이 가장 약하고 127이 가장 강합니다.
이름이 '속도'인 이유는, 실제 피아노에서 건반을 얼마나 빠르게 내리눌렀는지가 소리의 세기를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세게 치려면 빠르게 눌러야 하니까요.
🔹 왜 이게 결정적인가요
마우스로 노트를 찍으면 모든 노트가 같은 벨로시티(보통 100 근처)로 들어갑니다. 그러면 어떻게 될까요.
모든 음이 정확히 같은 세기로 울립니다. 사람은 절대 그렇게 연주하지 못해요. 아무리 정확한 연주자라도 음마다 미세하게 세기가 다릅니다. 그 미세한 차이가 사라지면 우리 귀는 즉각 "이건 사람이 아니다"라고 판단합니다.
좋은 가상악기를 사고도 소리가 싸구려처럼 들린다면, 악기 문제가 아니라 벨로시티가 평평해서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 어떻게 손대면 되나요
피아노롤 아래쪽에 막대그래프처럼 생긴 영역이 있습니다. 그게 벨로시티 레인이에요. 막대를 위아래로 끌면 세기가 바뀝니다.
시작할 때 이 정도만 기억하세요.
・강박(1박, 3박)은 조금 세게
・약박은 조금 약하게
・드럼 하이햇처럼 촘촘히 반복되는 소리는 특히 강약을 넣어야 살아남
・값이 아니라 차이가 중요. 90과 95만 오가도 훨씬 자연스러워집니다
⑤ 퀀타이즈 — 박자를 맞춰주는 기능, 그리고 그 함정 ⏱️
🔹 퀀타이즈가 뭔가요
퀀타이즈(Quantize)는 박자에서 어긋난 노트를 격자에 맞춰 정렬해주는 기능입니다.
건반을 직접 연주해서 녹음하면 아무리 잘 쳐도 몇 밀리초씩 밀리거나 당겨집니다. 그걸 자동으로 반듯하게 정리해주는 거예요. 버튼 하나 누르면 삐뚤빼뚤하던 노트들이 격자에 착착 붙습니다.
마우스로 찍는 경우에는 이미 격자에 붙어 있으니 쓸 일이 적지만, 건반을 연결해서 연주 입력을 하기 시작하면 매일 쓰게 됩니다.
🔹 그런데 100% 퀀타이즈가 항상 정답은 아닙니다
여기서 한 번 짚고 가야 합니다.
노트를 전부 격자에 정확히 붙이면 리듬이 완벽해집니다. 그런데 완벽한 리듬은 종종 심심하게 들려요. 사람의 연주에서 느껴지는 밀당, 소위 그루브라고 부르는 것은 바로 그 미세한 어긋남에서 나오거든요.
실제로 드러머들은 스네어를 아주 살짝 늦게 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게 곡을 묵직하게 만들어요. 반대로 빠른 댄스 음악에서는 살짝 당겨 치면 곡이 앞으로 밀리는 느낌이 납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DAW에는 퀀타이즈 강도(strength) 라는 파라메터가 있습니다. 100%면 완전히 격자에 붙이고, 70%면 격자 쪽으로 70%만 끌어당기고 나머지 어긋남은 남겨둡니다.
💡 시작할 때의 기준
・전자음악·힙합 드럼: 100% 퀀타이즈로 시작. 정확함이 장르의 성격입니다
・어쿠스틱한 연주, 밴드 느낌: 70~90% 정도로 여유를 남기기
・다만 이건 어디까지나 출발점입니다. 걸어보고 듣고, 어색하면 되돌리세요
처음에는 100%로 다 맞춰도 괜찮습니다. 리듬이 어긋난 것보다는 낫거든요. 다만 "퀀타이즈를 걸었는데도 뭔가 딱딱하다" 싶은 순간이 오면, 그때 이 얘기를 떠올리시면 됩니다.
⑥ 노트 길이도 소리를 바꿉니다 📏
의외로 놓치는 부분입니다.
같은 음, 같은 세기라도 노트를 짧게 자르면 툭툭 끊기는 느낌, 길게 늘이면 이어지는 느낌이 납니다. 베이스에서 특히 티가 나요. 노트를 꽉 채우면 묵직하게 이어지고, 절반만 남기면 통통 튀는 느낌이 됩니다.
🔹 손대볼 만한 곳
・베이스: 길이를 조금씩 바꿔가며 그루브를 찾기
・스트링·패드: 노트를 서로 겹치게 하면 부드럽게 이어짐
・피아노 코드: 전부 똑같은 길이보다 살짝씩 다르게 하면 자연스러움
⑦ 뭐부터 만들어야 하나요 🥁
멜로디부터 찍으려다 막히는 분이 많습니다. 순서를 바꾸시길 권합니다.
🔹 드럼부터 시작하세요
이유가 있습니다. 드럼은 음정이 없어서 음악 이론을 몰라도 됩니다. 킥, 스네어, 하이햇 세 개만 있으면 곡이 됩니다. 그리고 피아노롤 조작법을 익히는 연습으로 이보다 좋은 게 없어요.
가장 기본적인 8비트는 이렇습니다.
・킥: 1박, 3박
・스네어: 2박, 4박
・하이햇: 8분음표로 계속 (1/8 그리드에 쭉)
이것만 찍어도 이미 음악입니다. 여기에 하이햇 벨로시티를 강약으로 흔들어보세요. 갑자기 살아납니다.
그 다음에 베이스를 얹고, 그 다음에 코드를, 마지막에 멜로디를 올리면 됩니다.
⑧ Q&A 💬
Q. 건반(마스터 키보드)이 꼭 있어야 하나요?
A. 없어도 됩니다. 마우스로 찍어도 완성도 있는 곡이 나옵니다. 다만 있으면 작업 속도가 몇 배 빨라지고, 연주로 들어간 미세한 강약과 타이밍이 자연스러움을 만들어줍니다. 25건반짜리 소형 제품은 10만 원 안쪽에도 있으니, 계속 하실 거라면 초기에 사는 걸 권합니다.
Q. 마우스로 찍은 게 티가 나나요?
A. 벨로시티를 손대지 않으면 티가 납니다. 반대로 벨로시티와 노트 길이만 신경 써서 다듬으면, 마우스로 찍은 것과 연주한 것을 구분하기 어렵습니다. 실제로 상업 음악 중에도 전부 마우스로 만든 곡이 많습니다.
Q. 음악 이론을 모르는데 미디를 찍을 수 있나요?
A. 드럼은 이론이 전혀 필요 없습니다. 멜로디나 코드로 가면 알아두는 게 유리하지만, 몰라도 귀로 찍어가며 배울 수 있어요. 요즘 DAW에는 코드 트랙이나 스케일 가이드 기능이 있어서 틀린 음을 아예 못 찍게 막아주기도 합니다.
Q. 벨로시티를 몇으로 맞춰야 하나요?
A. 정해진 숫자는 없습니다. 가상악기마다 반응이 완전히 달라요. 어떤 악기는 100만 넘어가도 음색이 확 바뀌고, 어떤 악기는 거의 변화가 없습니다. 그래서 숫자를 외우는 것보다 그 악기를 켜놓고 벨로시티를 위아래로 흔들어보며 어디서 음색이 바뀌는지 직접 확인하는 게 빠릅니다.
⑨ 오늘 할 일 ✍️
읽고 끝내면 아무것도 남지 않습니다. 지금 DAW를 켜고 이것만 해보세요.
1. 드럼 트랙 하나 만들기
2. 8비트 패턴 여덟 마디 찍기 (킥 1·3박, 스네어 2·4박, 하이햇 8분음표)
3. 하이햇 벨로시티만 강약으로 흔들어보기
4. 흔들기 전과 후를 비교해서 듣기
4번이 핵심입니다. 그 차이를 귀로 확인하는 순간, 벨로시티가 왜 중요한지 설명 없이 이해됩니다.
수치는 정답이 아니라 출발점입니다. 결국 판단은 귀가 합니다.
마무리
오늘 내용을 한 줄로 압축하면 이렇습니다.
"미디는 악보고 가상악기가 연주자다. 그리고 그 악보를 사람처럼 만드는 건 벨로시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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