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팝은 왜 다 비슷하게 들릴까 — 46만 곡을 재봤더니
플레이리스트를 틀어놓고 작업하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방금 곡이 바뀐 건가? 아까 그 곡이 아직 안 끝난 건가?
나쁜 곡이라서가 아닙니다. 잘 만들어졌고, 잘 섞였고, 어디 하나 흠잡을 데가 없어요. 그런데 앞 곡과 구분이 안 갑니다.
이게 나이 탓이라거나 요즘 음악이 못하다는 얘기를 하려는 게 아닙니다. 그렇게 결론 내면 편하긴 한데, 실제로 재본 사람들이 있거든요. 오늘은 그 숫자를 보고, 왜 그렇게 됐는지를 따라가 보겠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좀 불편한 이야기를 하나 하려고 합니다. 같은 일이 지금 우리 곡에서도 일어나고 있다는 것.
① 진짜 비슷해진 건가, 내 기분인가 🤔
"요즘 노래 다 똑같다"는 말은 언제나 있었습니다. 1960년대에도 있었고 1980년대에도 있었어요. 대체로 나이 먹은 사람이 하는 말이었고, 대체로 틀린 말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질문은 느낌으로 답하면 안 됩니다. 재봐야 해요.
문제는 "비슷하다"를 어떻게 재느냐입니다. 곡을 듣고 점수를 매기면 그건 결국 취향이니까요. 그래서 연구자들은 사람의 판단을 빼고 음원 자체에서 뽑을 수 있는 값만 봤습니다.
② 46만 곡을 재봤더니 📊
2012년에 스페인 연구팀이 낸 논문이 있습니다. 밀리언 송 데이터셋이라는 대규모 음원 데이터에서 1955년부터 2010년까지의 곡 464,411개를 골라, 세 가지 값의 변화를 추적했습니다.
세 가지는 이렇습니다.
🔹 음고 — 어떤 음과 어떤 음이 이어서 나오는가. 코드와 멜로디의 재료입니다.
🔹 음색 — 소리의 색깔과 질감. 어떤 악기를 어떻게 녹음했느냐가 여기 들어갑니다.
🔹 라우드니스 — 음원 자체에 새겨진 음량. 듣는 사람이 볼륨 노브로 바꾸는 그 음량이 아니라, 파일 안에 이미 들어 있는 크기예요.
결과는 셋 다 같은 방향이었습니다.
음고 — 이어지는 조합이 줄었다
음이 다음 음으로 넘어가는 경로의 가짓수가 좁아졌어요. 쓰던 것만 쓰게 됐다는 뜻입니다.
음색 — 자주 쓰이던 게 더 자주 쓰이게 됐다
논문의 표현을 빌리면 음색 팔레트가 균질해졌습니다. 인기 있는 음색이 점점 더 큰 비중을 차지했어요.
라우드니스 — 평균이 계속 올라갔다
그리고 올라간 만큼 다이내믹의 폭이 좁아졌습니다.
📌 이 연구를 읽을 때 조심할 것
이건 "요즘 음악이 나쁘다"는 결론이 아닙니다. 논문이 잰 건 다양성의 폭이지 좋고 나쁨이 아니에요. 그리고 재료는 어디까지나 데이터셋이 자동 추출한 수치라, 사람이 악보를 보고 분석한 것과는 다릅니다. 큰 흐름을 보는 데는 쓸 만하지만 개별 곡 판정에는 쓸 수 없습니다.
그리고 논문에서 더 흥미로운 건 따로 있었습니다. 50년 넘게 거의 변하지 않은 값들이 훨씬 많았다는 것. 연구팀은 이걸 두고 이 음악에 상당한 관습성이 있다고 표현했습니다. 변한 건 일부고, 나머지는 원래부터 정해진 틀 안에 있었다는 얘기죠.
③ 음색이 뭉친 이유 — 도구가 같아졌다 🎛️
여기서부터는 논문 밖의 이야기이고, 제 추론입니다. 사실로 재본 사람은 아직 못 봤습니다. 다만 만드는 쪽에서 보면 이유가 꽤 뻔합니다.
1970년대에 킥 드럼 소리를 정하려면 이런 것들이 필요했습니다. 어떤 드럼을 쓸지, 어떤 헤드를 씌울지, 어떤 방에서 칠지, 어떤 마이크를 어디에 세울지, 어떤 프리앰프를 통과시킬지. 선택지가 곱셈으로 늘어나니 결과도 제각각이었습니다.
지금은 다릅니다. 킥 소리를 정하는 일은 대체로 샘플 라이브러리에서 하나를 고르는 일이에요. 그런데 그 라이브러리를 전 세계 제작자가 같이 씁니다.
・같은 샘플 서비스에서 다운로드합니다
・그 서비스의 인기 순위가 무엇을 쓸지 결정합니다
・신스는 같은 몇 개를 쓰고, 프리셋도 기본 제공되는 걸 씁니다
・플러그인도 "이건 다들 쓴다"는 몇 개로 좁혀집니다
곱셈이 덧셈으로 바뀐 겁니다. 게다가 인기 순위가 있으면 쏠림은 가속됩니다. 많이 쓰이는 게 위로 올라가고, 위에 있으니 더 많이 쓰이고.
⚠️ 오해하지 마시길
샘플이나 프리셋을 쓰는 게 잘못이라는 얘기가 아닙니다. 저도 씁니다. 좋은 도구가 싸게 풀린 건 명백히 좋은 일이고, 덕분에 방에서 혼자 만든 음악이 나올 수 있게 됐습니다. 다만 모두가 같은 걸 쓰면 결과가 닮는다는 부작용이 따라온다는 것뿐입니다.
④ 코드가 단순해진 이유 — 검증된 것만 남는다 🔁
음고 쪽은 조금 다른 힘이 작동합니다.
옛날에는 곡이 성공했는지 알려면 시간이 걸렸습니다. 라디오에 걸고, 음반을 찍고, 반응을 기다렸어요. 그래서 무엇이 통하는지에 대한 정보가 느리고 흐릿했습니다.
지금은 즉시 알 수 있습니다. 어떤 곡이 몇 번 재생됐고, 어디서 멈췄고, 어떤 구간이 반복 재생됐는지가 숫자로 나옵니다.
정보가 정확해지면 검증된 쪽으로 몰려요. 통계가 좋은 진행이 있으면 그걸 쓰게 되고, 그게 또 통계를 만들고요. 이건 게으름이나 상술의 문제라기보다 피드백이 빨라지면 자연히 생기는 일에 가깝습니다.
🔹 여기서 한 가지 덧붙이면
표절 소송이 늘어난 것도 무관하지 않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특이한 진행일수록 누군가의 것과 닮았다는 주장이 나오기 쉬우니, 아예 흔한 것만 쓰는 게 안전하다는 논리죠. 다만 이건 업계에서 도는 이야기이고 수치로 확인된 건 아닙니다.
⚠️ 저작권 관련 내용은 참고용입니다
이 글의 저작권·소송 관련 서술은 일반적인 배경 설명이고, 법률 자문이 아닙니다. 실제 분쟁이나 계약이 걸린 상황이라면 반드시 전문가와 상담하세요.
⑤ 소수의 손 🎚️
또 하나 단순한 이유가 있습니다. 같은 사람이 만들면 비슷하게 들립니다.
스웨덴 출신 프로듀서 맥스 마틴은 빌보드 핫100 1위 곡을 20곡 넘게 만들었습니다. 프로듀서 부문 역대 최다예요. 1999년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데뷔곡을 시작으로, 이후 20년 넘게 서로 다른 아티스트의 이름을 달고 나온 히트곡들이 상당수 같은 사람의 손을 거쳤습니다.
▶ Britney Spears - ...Baby One More Time
차트 상위권에서 이런 집중이 일어나면, 듣는 쪽에서는 아티스트가 다른데도 비슷하게 들리는 게 당연합니다. 실제로 만든 사람이 같으니까요.
⑥ 그런데 이건 처음이 아니다 🏭
여기까지 읽으면 요즘이 유난히 심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옛날 음악을 들여다보면 이야기가 좀 달라집니다.
모타운은 1959년부터 1972년까지 디트로이트에서 히트곡을 찍어냈습니다. 그 시기 모타운 음반의 반주 대부분을 연주한 건 펑크 브라더스라는 하우스 밴드였어요. 「My Girl」도, 「I Heard It Through the Grapevine」도, 「Ain't No Mountain High Enough」도 같은 연주자들이 쳤습니다. 아티스트는 계속 바뀌는데 뒤에서 소리를 만드는 사람은 그대로였던 거죠.
▶ The Temptations - My Girl
심지어 이들은 대부분의 음반에 이름조차 실리지 않았습니다. 듣는 사람은 서로 다른 그룹의 노래라고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같은 방에서 같은 손으로 만들어진 소리였습니다.
같은 시기 뉴욕의 브릴 빌딩에서는 작곡가들이 사무실에 출근해서 곡을 썼습니다. 한 건물 안에서 히트곡이 대량으로 나왔어요.
🔹 그래서 뭐가 다른가
구조는 놀랄 만큼 비슷합니다. 소수의 제작자, 반복되는 공식, 검증된 것의 재사용.
다만 하나가 다릅니다. 모타운의 균일함은 그 방에 있는 사람들의 손버릇에서 나왔습니다. 세상에 하나뿐인 균일함이었어요. 그래서 우리는 지금도 그 소리를 "모타운 사운드"라고 부릅니다.
지금의 균일함은 전 세계가 같은 라이브러리를 공유해서 생깁니다. 특정 지역이나 특정 스튜디오의 색이 아니라, 그냥 어디서나 같은 소리인 거죠. 이게 더 나쁘다는 뜻은 아니지만, 성격이 다른 건 분명합니다.
⑦ 내 곡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
여기까지는 남 얘기였습니다. 이제 불편한 쪽입니다.
앞에서 말한 세 가지 힘이 대형 제작사에만 작동할까요. 아닙니다. 오히려 혼자 만드는 쪽에 더 세게 작동합니다. 대형 제작사에는 최소한 자기만의 악기와 스튜디오가 있지만, 우리에겐 다운로드한 라이브러리밖에 없거든요.
한번 확인해 보세요.
🔹 작년에 만든 곡 세 개를 나란히 들어본다
킥이 같은 샘플인가요. 스네어는요. 코드 진행이 몇 종류인가요. 세 곡의 템포 차이가 10 BPM 안쪽인가요.
🔹 레퍼런스를 몇 곡이나 쓰는가
같은 두세 곡을 계속 기준으로 삼고 있다면, 그 곡들의 특징이 내 곡에 조금씩 옮겨 붙습니다. 좋은 기준이긴 한데 폭은 좁아집니다.
🔹 프리셋을 얼마나 만지는가
프리셋을 불러온 뒤 파라메터를 하나도 안 건드렸다면, 그 소리는 같은 프리셋을 쓴 다른 사람 곡과 정확히 같은 소리입니다.
📌 처방은 간단합니다
제약을 하나 걸면 됩니다. 다음 곡에서 평소 안 쓰던 것 하나만 정해두는 거예요. 안 쓰던 템포대, 안 쓰던 악기, 안 쓰던 키. 하나면 충분합니다. 두 개 이상 걸면 곡이 안 끝납니다.
⑧ Q&A 💬
Q. 그럼 비슷하게 만드는 게 나쁜 건가요?
아니요. 듣는 사람이 익숙한 소리를 좋아하는 건 사실이고, 팔리는 곡을 만드는 게 목표라면 검증된 걸 쓰는 게 합리적입니다. 다만 모르는 채로 비슷해지는 것과 알고서 선택하는 건 다릅니다. 이 글은 후자를 하자는 얘기입니다.
Q. 라우드니스는 스트리밍 노멀라이제이션으로 끝난 문제 아닌가요?
음량 경쟁 자체는 힘이 많이 빠졌습니다. 플랫폼이 재생 시 음량을 맞춰버리니 크게 만들 이유가 줄었어요. 다만 이미 눌러서 만든 음원의 다이내믹은 돌아오지 않습니다. 눌러 놓고 볼륨만 내리면 작고 납작한 소리가 될 뿐이니까요.
Q. 통계가 좋은 코드 진행을 알 수 있나요?
개인 제작자가 볼 수 있는 건 자기 곡의 재생 데이터 정도입니다. 곡 단위 성과 데이터는 유통사와 플랫폼 쪽에 있어요. 그러니 "통계에 맞춰 만든다"는 건 대형 제작 현장 이야기이고, 우리 쪽에서는 그냥 많이 들리는 걸 따라가는 정도입니다.
Q. 이 연구 이후에 나온 후속 연구도 있나요?
비슷한 방향의 분석이 여럿 나왔지만 결과가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습니다. 데이터셋과 측정 방식에 따라 결론이 달라지는 영역이라, 하나의 논문을 정답처럼 인용하는 건 위험합니다. 오늘 소개한 것도 큰 흐름을 보는 참고 자료로 봐주세요.
⑨ 오늘 할 일 ✍️
10분이면 됩니다.
1. 최근에 만든 곡 세 개를 폴더에서 꺼냅니다
2. 각각의 템포를 적습니다
3. 킥 샘플 파일명도 옆에 적어둡니다
4. 마지막으로 코드 진행을 적습니다
5. 셋을 나란히 놓고 봅니다
겹치는 게 두 개 이상이면 그건 스타일일 수도 있고 관성일 수도 있습니다. 구분하는 방법은 하나뿐이에요. 일부러 다르게 한 곡을 만들어 보는 것. 만들어 보고 마음에 안 들면 그건 스타일이 맞습니다.
마무리
요즘 팝이 비슷하게 들리는 건 기분 탓만은 아닙니다. 46만 곡을 재본 결과가 그렇게 나왔고, 그럴 만한 이유도 있습니다. 도구가 같아졌고, 무엇이 통하는지가 너무 빨리 알려지고, 만드는 사람이 소수에 몰려 있습니다.
그런데 이건 처음 있는 일도 아니고, 그 자체로 나쁜 일도 아닙니다. 모타운도 같은 사람들이 같은 방에서 찍어냈고, 우리는 그 소리를 지금까지 좋아합니다.
정말 중요한 건 이겁니다. 내가 그 흐름 안에 있다는 걸 알고 있느냐. 알고 있으면 언제든 한 발 빼볼 수 있고, 모르면 그냥 휩쓸려요. 다음 곡에서 하나만 다르게 해보세요. 그거면 충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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