믹싱이 연주가 된 날 — 킹 터비와 덥의 탄생

DAW에서 리버브 센드를 순간적으로 열었다 닫아본 적 있으신가요. 딜레이 피드백을 확 올려서 소리가 저 멀리 사라지게 만든 적은요. 브레이크 구간에서 드럼만 남기고 전부 빼버린 적은 분명 있으실 겁니다.

이게 전부 한 사람이 1970년대 킹스턴의 작은 방에서 처음 한 일입니다. 정확히는 처음 곡 만들기로 한 일이죠. 이름은 오스본 러독, 다들 킹 터비라고 불렀습니다.

그가 한 일을 기술로만 보면 페이더와 노브를 만진 것이 전부입니다. 그런데 그 결과로 바뀐 건 소리가 아니라 곡을 만드는 사람이 누구인가라는 질문이었어요. 어떻게 거기까지 갔는지를 순서대로 따라가 보겠습니다.

① 라디오 고치던 사람 📻

시작은 음악이 아니라 수리였습니다.

1941년 킹스턴에서 태어난 그의 직업은 라디오 수리공이었어요. 드럼알리 애비뉴에 가게를 두고 텔레비전과 라디오를 고쳤습니다. 음악과 상관없어 보이는 이 이력이 나중에 전부가 됩니다.

당시 자메이카에는 사운드시스템이라는 게 있었습니다. 거대한 스피커와 앰프를 트럭에 싣고 다니며 길거리에서 판을 트는, 일종의 이동식 클럽이죠. 카리브해의 습한 날씨에 기계는 툭하면 고장 났고(거기다 경쟁 사운드시스템끼리 서로 장비를 망가뜨리는 일도 있었습니다) 고칠 사람이 늘 필요했습니다. 터비에게는 일감이 끊이지 않았어요.

다만 그는 고치는 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앰프를 직접 만들었고, 저음과 고음을 따로 증폭하게 회로를 바꿨고, 에코와 리버브를 내는 장치를 손수 만들거나 개조했습니다. 1961년에서 62년 사이에는 송신기를 만들어 해적 라디오 방송까지 했어요. 스카와 리듬 앤 블루스를 틀었는데, 경찰이 해적 방송을 찾고 있다는 소문을 듣고 곧 접었다고 합니다.

남의 기계를 고치다 보니 자기 기계를 갖고 싶어진 건 자연스러운 수순이었습니다.

② 길거리에서 이펙트가 걸린다 🔊

1968년, 그는 자기 사운드시스템 Tubby's Hometown Hi-Fi를 만듭니다.

이게 곧바로 킹스턴에서 제일 인기 있는 사운드시스템이 됐어요. 장비가 좋았고 다른 데 없는 판을 갖고 있었던 것도 이유지만, 결정적인 건 따로 있었습니다. 에코와 리버브를 현장에서 걸었어요.

지금 감각으로는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당시에 이펙트는 스튜디오 안에서만 존재하는 것이었습니다. 야외에서 틀어놓은 판에 갑자기 에코가 걸려 목소리가 저 멀리 날아가는 경험은 들어본 적 없는 종류의 사건이었죠. 이 사운드시스템에서 마이크를 잡던 사람이 유로이(U-Roy) 였고, 그렇게 커리어가 시작됩니다.

▶ U-Roy — Wear You To The Ball

존 홀트의 노래 위에 유로이가 말을 얹은 것입니다. 원곡이 따로 있고 그 위에 다른 사람이 얹는 이 구조가, 나중에 힙합에서 하는 일과 놀랍도록 닮아 있습니다. 시기는 이쪽이 앞서고요.

다만 이렇게 마이크를 잡으려면 조건이 하나 필요했습니다. 위에 얹을 수 있게 보컬이 비어 있는 판이요.

③ 보컬을 지운 면이 팔린다 💿

그 판을 만드는 일이 마침 터비에게 떨어집니다.

같은 1968년, 그는 프로듀서 듀크 리드의 트레저 아일 스튜디오에서 디스크 커터로 일하기 시작했어요. 마스터 테이프를 받아 판에 홈을 새기는 일이죠. 이 무렵 자메이카에서는 "버전" 이라는 게 퍼지고 있었습니다. 히트곡의 보컬을 뺀 연주 버전을 싱글 B면에 넣는 관행이에요. 사운드시스템에서 마이크 잡는 사람들이 그 위에 자기 말을 얹어야 했으니까요. 지금으로 치면 인스트루멘털이고, 더 나아가면 노래방 반주입니다.

터비가 맡은 일이 이 버전을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단순했어요. 믹싱 콘솔에서 보컬 페이더를 내리면 끝이었으니까.

매일 그 앞에 앉아 있다 보니 한 가지를 알게 됩니다. 페이더는 내리는 것만 할 수 있는 게 아니었습니다.

④ 실수를 지우려다 장르가 됐다 🎚️

여기서 리 "스크래치" 페리가 남긴 증언이 재미있습니다. 터비는 원래 녹음의 실수를 감추려고 트랙을 뺐다는 거예요. 연주가 틀린 구간이 있으면 그 악기를 통째로 빼버리고 다른 악기를 대신 키웠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고 나니 원래 곡보다 재미있었습니다.

게다가 터비의 믹스는 전부 실시간이었어요. 테이프를 돌려놓고 그 자리에서 트랙을 뺐다 넣었다 하면서 녹음했습니다. 그러니 같은 곡을 두 번 믹스하면 두 번 다 달라져요. 페리는 같은 녹음으로 완전히 다른 버전이 여러 개 나왔다고 말했습니다.

앞에서 던진 질문이 여기서 답을 찾습니다. 믹싱이 옮겨 담는 일이 아니라 연주가 된 겁니다. 그때까지 엔지니어는 뮤지션이 만든 것을 잘 담는 사람이었는데, 터비는 이미 다 만들어진 녹음을 재료로 새 곡을 만들고 있었어요.

문제는 남의 스튜디오에서는 이걸 마음껏 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⑤ 콘솔을 악기로 🎛️

1971년, 그는 워터하우스에 자기 스튜디오를 엽니다. 바이런 리의 다이나믹 스튜디오에서 사온 중고 믹서로 시작했어요.

여기서 짚어야 할 게 있습니다. 이 스튜디오에는 연주자를 녹음할 설비가 없었습니다. 남이 만든 멀티트랙 마스터 테이프를 받아서 다시 만드는 곳이었어요. 지금으로 치면 스템만 받아서 작업하는 리믹서죠. 창작의 출발점이 악기가 아니라 남의 녹음이라는 사실을, 이 공간 자체가 말해주고 있었습니다.

전설이 된 물건이 하나 있습니다. 다이나믹에서 사온 MCI 12채널 콘솔에 달려 있던 하이패스 필터예요. 큰 노브 하나로 조작하는 방식이라 사람들이 "빅 노브"라고 불렀는데, 이걸 돌리면 소리의 아래쪽이 점점 잘려나가면서 신호가 가늘어집니다. 호른 섹션을 이 노브로 쓸어 올리면 두툼하던 소리가 얇게 갈라지면서 비명처럼 변하다가 사라져요.

DAW를 쓰는 지금은 필터 컷오프 오토메이션이 기본 기능이지만, 그때는 콘솔에 달린 필터를 손으로 돌려서 연주하는 것이었습니다. 다른 스튜디오에는 없던 소리였고, 그래서 터비의 서명이 됐습니다.

여기에 테이프 에코의 피드백을 올려 무한히 반복시키고, 스프링 리버브 유닛을 손으로 쳐서 천둥 같은 소리를 내고, 베이스와 드럼만 남긴 채 보컬 한 조각을 툭 던져 넣었어요. 우리가 지금 덥이라고 부르는 것이 여기서 완성됩니다.

▶ King Tubby Meets Rockers Uptown — Augustus Pablo

1974년에 만든 이 곡이 가장 유명합니다. 원래는 제이콥 밀러의 노래를 위한 세션이었는데, 터비가 드럼에 에코를 걸자 밥 말리의 드러머 칼튼 배럿이 친 리듬이 여러 번 되풀이되면서 완전히 다른 리듬이 되어버렸어요. 그 리듬에 나중에 "로커스"라는 이름이 붙습니다. 오거스터스 파블로의 멜로디카가 위에 얹혀 있고요.

리 페리와 함께한 작업도 중요한 기록입니다. 덥이 싱글 B면을 넘어 앨범 한 장 분량으로 나온 초기 사례로 꼽혀요.

▶ Blackboard Jungle Dub — Lee "Scratch" Perry

지금 이 두 곡을 들으면 이상할 만큼 익숙합니다. 거기서 쓰인 기법들이 이름만 바뀌어 우리 DAW 안에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이에요.

⑥ 지금 DAW에서 그대로 쓰는 것들 🖥️

하나씩 맞춰보면 이렇습니다.

🔹 드롭아웃 / 브레이크다운 — 트랙을 순간적으로 다 빼고 드럼만 남기는 것. 지금은 모든 장르에서 씁니다

🔹 딜레이 스로우 — 한 단어나 한 소절에만 딜레이를 순간적으로 걸어 저 멀리 던지는 것. 힙합 애드리브, 팝 보컬 후크에서 흔합니다. 센드를 오토메이션으로 한 박자만 여는 방식이죠

🔹 필터 스윕 — 하이패스로 아래를 잘라가며 소리를 사라지게 만들고 다시 여는 것. EDM의 빌드업이 이것의 후손입니다

🔹 피드백 폭주 — 딜레이 피드백을 100% 근처로 올려 스스로 증식하게 두는 것

🔹 리버브만 남기기 — 원음을 끊고 잔향만 남겨 공간을 노출시키는 것

📌 오늘 15분이면 해볼 수 있습니다

좋아하는 곡의 스템이나 자기 프로젝트를 열고, 리버브를 센드로 걸어두세요. 그다음 마우스로 센드 양을 오토메이션하면서 한 박자만 확 열었다 닫습니다. 딜레이도 하나 걸고 피드백을 평소보다 훨씬 높여 두세요. 그리고 후렴 직전에 드럼 빼고 베이스만 남겨봅니다. 이 세 가지만 해도 덥의 문법이 뭔지 몸으로 알게 됩니다.

이 문법이 킹스턴 바깥으로 나간 건 터비 혼자 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가 가르친 사람들이 있었어요.

⑦ 제자들이 이어받다 🌍

1970년대 후반부터 터비는 직접 믹스하는 일을 줄이고 후배들을 가르칩니다. 킹 재미가 나왔고, 가장 뛰어난 제자로 꼽히는 사이언티스트(호프턴 브라운)가 나왔어요.

그사이 터비 자신의 이름은 수백 장의 싱글 B면에 찍혔습니다. 워낙 여러 레이블과 프로듀서를 거쳐서 완전한 디스코그래피를 만드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해요. 이름이 안 적혔지만 그의 손을 거친 것으로 보이는 판도 많고요.

마이키 드레드가 한 말이 이 사람을 잘 요약합니다. 터비는 소리를 과학으로 이해했고, 회로가 어떻게 동작하는지 전자가 무엇을 하는지 알았기 때문에 그런 걸 할 수 있었다는 겁니다. 라디오 수리공으로 시작한 이력이 끝까지 그의 강점이었던 셈이에요.

⑧ 1989년 2월, 그리고 그 뒤 ⚫

1989년 2월 6일, 워터하우스 스튜디오에서 작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그는 자택 앞에서 총에 맞아 숨졌습니다. 마흔여덟이었어요. 강도를 당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그가 만든 방식은 이미 자메이카를 떠난 뒤였습니다. 영국으로 건너간 자메이카 이민자들의 사운드시스템 문화는 정글과 드럼앤베이스가 됐고, 뉴욕으로 간 쪽은 힙합 DJ 문화와 만났어요. 덥 특유의 공간감은 일렉트로니카 전반에 깔렸습니다. 오늘날의 리믹스라는 개념 자체가 여기서 출발했다고 보는 시각이 일반적이고요.

마무리

킹 터비가 바꾼 건 기법이 아니라 처음에 던진 그 질문, 누가 창작자인가입니다. 그전까지 곡을 만드는 사람은 작곡가와 연주자였고, 엔지니어는 그걸 잘 담는 사람이었어요. 터비는 이미 다 만들어진 녹음을 재료로 새 곡을 만들었고, 그 결과물이 원곡만큼 팔렸습니다.

지금 우리가 컴퓨터 앞에서 하는 일이 정확히 그것입니다. 녹음된 소리를 재료로 다시 만드는 것. 라디오 수리공이 페이더 하나로 시작한 일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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