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계 수리공과 나이트클럽 사장 — 신디사이저 회사가 전부 일본이 된 이유

스튜디오를 둘러보면 이름이 비슷비슷합니다. 롤랜드, 코르그, 야마하. 신디사이저도 건반도 음원 모듈도, 십중팔구 이 셋 중 하나입니다.

신디사이저를 발명한 건 미국인데 말이죠. 무그도 부클라도 ARP도 다 미국 회사였고, 1970년대 초까지는 그쪽이 시장이었습니다.

그런데 1980년대를 지나면서 판이 뒤집힙니다. 무그가 없어지고 ARP가 없어지고, 남은 자리를 전부 일본 회사가 가져갑니다.

왜 그렇게 됐을까요. 흔히 "일본이 정밀 제조에 강해서"라고 정리되는데, 실제 기록을 따라가 보면 훨씬 구체적인 이유 넷이 나옵니다. 그리고 그중 하나는 경쟁사끼리 모여서 책을 두 권 낸 일입니다.

① 창업자들이 연구소에서 안 나왔다 🔧

먼저 사람부터 봅니다.

롤랜드를 만든 이쿠타로 카케하시는 1930년생입니다. 두 살에 부모를 결핵으로 잃고 오사카에서 자랐어요. 1946년에 건강 문제로 대학 입학이 좌절되자 규슈로 가서 측량 보조로 먹고삽니다.

그때 열여섯 살짜리가 발견한 게 이겁니다. 전후 일본에는 시계 만드는 산업이 없다. 그러니 있는 시계를 고치는 일은 된다.

시계 수리점에 들어갔는데 7년짜리 도제 과정을 몇 달 만에 배우겠다고 우겨서 쫓겨납니다. 그래서 책을 한 권 사서 전 고용주 옆에 자기 가게를 엽니다. 그게 잘됩니다.

단파 라디오 청취가 합법화되자 해외 방송을 듣다가 라디오 회로를 익혔고, 고장 난 세트를 뜯어 작동하는 걸 만들면서 수리 품목을 라디오까지 늘립니다.

스무 살에 오사카로 돌아왔다가 양쪽 폐에 결핵이 옵니다. 학비로 모아둔 돈이 치료비로 다 나가고, 병원에서 몇 년을 보내며 직원과 다른 환자들 시계와 라디오를 고쳐주며 버팁니다. 그 와중에 입원 상태로 브라운관을 빌려 TV 수신기를 직접 조립합니다. 일본 첫 시험방송을 보겠다고요.

병세가 말기로 가던 중에 신약 스트렙토마이신 임상 대상자로 뽑혀서 1년 안에 퇴원합니다. 약값을 감당할 수 있는 형편이 아니었으니, 선정되지 않았으면 이 이야기는 여기서 끝났을 겁니다.

코르그를 만든 츠토무 카토는 나이트클럽 사장이었습니다. 1962년 도쿄에서 도쿄대를 나온 아코디언 연주자 타다시 오사나이와 회사를 세웁니다. 오사나이가 카토의 클럽에서 월리처 사이드맨이라는 리듬머신 반주로 연주하던 게 시작이었어요.

회사 이름 게이오(Keio)는 사무실이 게이오선 근처였던 것과 카토(K)와 오사나이(O)의 머리글자를 겹친 겁니다. 나중에 제품명을 KORGUE로 지었는데, 이것도 Katoh + Osanai + 프랑스어 orgue(오르간)를 붙인 거고요.

여기가 중요합니다. 전자음악 회사를 만든 사람들이 음향 연구소 출신이 아니라 수리공과 클럽 사장이었습니다. 그러니 처음부터 감각이 달랐어요. "고장 나면 누가 고치나", "이 값이면 팔리나"를 먼저 생각하는 쪽이었습니다.

롤랜드의 첫 제품 TR-77. 신디사이저가 아니라 리듬 박스였습니다

롤랜드의 첫 제품 TR-77. 신디사이저가 아니라 리듬 박스였습니다 / 출처: Trouby / CC BY-SA 3.0 via Wikimedia Commons

② 1966년 1월, 책 두 권 📚

이게 오늘 이야기의 핵심 장면입니다.

1960년대 일본 특허법에는 구멍이 하나 있었습니다. 다른 나라에서 이미 널리 알려진 기술이라도, 일본 안에서 먼저 공표된 적이 없으면 해외 기업이 일본에 출원해 특허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무슨 뜻이냐면, 해외 제조사가 공지 기술을 들고 와서 일본에서 권리를 잡아버릴 수 있다는 겁니다. 갓 시작한 일본 제조사들에게는 치명적인 장벽이었어요.

여기에 카케하시와 동료 16명이 대응합니다. 그 안에는 게이오 오르간의 츠토무 카토도 있었습니다. 나중에 롤랜드와 코르그로 갈라져 서로 경쟁할 사람들이죠.

이들이 한 일은 모을 수 있는 기술 자료를 전부 모아서, 1966년 1월에 책 두 권을 내버린 것입니다.

🔹 『전기악기의 모든 것』

🔹 『전자악기의 모든 것』

이걸로 끝났습니다. 일본 안에서 공표가 됐으니, 해외 기업은 이제 진짜 새로운 아이디어가 아니면 일본에서 특허를 받을 수 없게 됐습니다. 일본 회사들은 공지 기술로 설계하고 제조하고, 그 위에 개량할 길이 열렸고요.

덤으로 이 두 권은 일본 최초의 전기·전자악기 설계 참고서가 됐습니다. 방어하려고 낸 책이 교과서가 된 셈이에요.

경쟁사끼리 모여서 "우리 전부 쓸 수 있게 공개해버리자"를 한 겁니다. 개별 회사가 잘해서 이긴 게 아니라, 회사들이 설 수 있는 바닥을 먼저 만든 쪽에 가깝습니다.

③ 다른 손님을 봤다 🎹

같은 시기 미국 회사들은 프로 연주자를 봤습니다. 무그도 ARP도 스튜디오와 이름난 뮤지션을 향해 만들었어요. 그래서 비쌌고, 그 값이 정당했습니다.

일본 회사들은 아마추어와 취미인을 향한 라인을 세웁니다. 저렴한 신디사이저를 만들 수 있게 된 게 이 시기고요.

결과가 이겁니다. 당시 젊은 음악가 다수에게 처음 만져본 신디사이저가 일본제였습니다.

이게 왜 큰 차이냐면, 처음 배운 악기가 그 사람의 기준이 되기 때문입니다. 손에 익은 인터페이스, 익숙해진 소리, 나중에 상위 기종으로 갈 때 자연스럽게 고르는 브랜드. 시장의 아래쪽을 가져가면, 10년 뒤에 위쪽이 따라옵니다.

미국 회사들은 시장의 윗부분에서 정확하게 잘하고 있었고, 그 아래가 훨씬 크다는 걸 늦게 알았습니다.

코르그의 첫 제품 돈카마틱 DA-20 (1963). 디스크가 돌아가며 리듬을 만듭니다

코르그의 첫 제품 돈카마틱 DA-20 (1963). 디스크가 돌아가며 리듬을 만듭니다 / 출처: Brandon Daniel / CC BY-SA 2.0 via Wikimedia Commons

여담인데 이 돈카마틱 때문에 일본 스튜디오와 방송 현장에서는 지금도 가이드 클릭을 「돈카마」라고 부릅니다. 제품명이 일반명사가 된 경우예요.

④ 싸게 만들고, 안 고장 나게 만들었다 🔩

1973년, 롤랜드가 SH-1000을 냅니다. 일본 최초의 신디사이저였어요. 코르그 700보다 몇 주 빨랐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좋은 악기는 아니었습니다. 당시 사람들이 원한 건 무그와 ARP의 두껍고 펀치 있는 소리였는데, SH-1000은 약하고 밋밋하다는 평을 들었어요. 압력 감지도, 퍼포먼스 컨트롤도, 듀오포니도, 스프링 리버브도 없었습니다. 다른 회사들이 이미 3년 전부터 넣고 있던 것들이요.

그런데 두 가지가 달랐습니다.

하나 — 쌌습니다.

카케하시는 연산 증폭기 개수를 줄이는 방향으로 설계해서 원가를 크게 낮췄습니다. 여기에 당시 엔/달러 환율이 붙어서, 미국에서 약 800달러에 팔렸습니다. 무그와 ARP 가격의 몇 분의 일이었어요.

둘 — 고장이 안 났습니다.

이게 생각보다 큽니다. 그 시절은 제조 품질이 들쭉날쭉하고 신뢰성이 나쁜 시대였어요. 그 와중에 일본 제품은 그냥 계속 작동했습니다. 30년이 지나도 조정 한 번 안 하고 쓰는 개체 이야기가 흔합니다.

싸고 안 고장 나는 것. 음악가에게는 사양표보다 이쪽이 실질적입니다. 특히 돈이 없는 음악가에게는요.

롤랜드 SH-1000. 일본 최초의 신디사이저였습니다

롤랜드 SH-1000. 일본 최초의 신디사이저였습니다 / 출처: Orson Wouters / CC BY-SA 4.0 via Wikimedia Commons

⑤ 처음부터 수출을 전제로 만들었다 🚢

여기도 재미있는 대목입니다. 롤랜드가 왜 해외부터 갔느냐.

국내에 자리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일본 악기 시장은 야마하와 가와이가 장악하고 있어서, 신생 회사가 기존 유형의 제품으로 붙어봐야 이길 수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혁신 제품이 국내에서 자리 잡을 때까지 버틸 현금도 없었고요.

그래서 창업 직후 카케하시가 한 일이 이렇습니다.

🔹 캐나다로 가서 아직 존재하지도 않는 리듬 머신의 주문을 받아옵니다

🔹 뉴욕의 멀티복스를 찾아갑니다. 에이스 시절 미국 수입사였죠

🔹 덴마크의 유럽 총판에 연락합니다. 영국·스위스·독일에 자회사가 있는 곳이었습니다

제품이 없는데 주문서부터 받은 겁니다. 그 주문으로 부품 살 돈을 만들었어요. 부품 공급사에는 본인 평판을 담보로 90일 결제 조건을 받아냈고요.

롤랜드는 자본금 10만 달러, 직원 7명, 빌린 창고에서 시작했습니다. 1972년 4월 18일이었어요.

참고로 회사 이름 'Roland'는 프랑스 서사시 『롤랑의 노래』와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부드러운 자음으로 된 2음절이 필요했던 것뿐입니다. 어느 나라 사람이든 발음할 수 있게요. 이것도 수출을 전제로 한 결정이었습니다.

⑥ 하마마쓰라는 동네 🏭

카케하시는 오사카에 살았는데 공장은 하마마쓰에 냈습니다. 초기에는 야간열차로 두 도시를 왕복했어요.

왜 하마마쓰였느냐. 야마하와 가와이가 거기 있었기 때문입니다.

악기 제조 클러스터가 이미 형성돼 있었다는 뜻입니다. 나무를 다루는 사람, 금속을 다루는 사람, 도색하는 사람, 건반 기구를 만드는 사람이 그 동네에 다 있었어요. 부품 하나가 필요하면 근처에서 구할 수 있고, 사람이 필요하면 경력자를 뽑을 수 있었습니다.

새로 만드는 회사에는 이게 큽니다. 바닥부터 만들 필요가 없었으니까요. 롤랜드는 나중에 회사 전체를 하마마쓰로 옮깁니다.

이 조건은 미국에는 없었습니다. 무그는 뉴욕주 트루먼스버그에, 부클라는 캘리포니아에 있었고, 근처에 악기 만드는 동네 같은 건 없었습니다.

⑦ 1980년대 — 미국 회사들이 못 따라간 지점 📉

여기서 판이 뒤집힙니다.

1983년부터 야마하 DX7이 디지털 FM 건반을 쏟아냅니다. 그 속도와 그 가격으로요. 이 물량 앞에서 기존 신디사이저 회사 다수가 무너집니다.

1987년 롤랜드 D-50이 샘플과 신서시스를 결합한 방식으로 합성의 정의를 다시 씁니다.

1988년 코르그 M1이 25만 대 넘게 팔립니다. 당시 기준 역대 최다 판매 신디사이저였어요.

같은 시기 무그와 ARP는 도산합니다. 기술이 부족해서가 아니었습니다. 산업이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넘어가는 그 전환을 못 따라간 것이었습니다.

이건 꽤 자주 반복되는 이야기입니다. 한 시대를 정의한 회사가 다음 시대에 못 넘어가는 일이요. 아날로그 회로 설계를 세계에서 제일 잘하던 사람들이, 디지털 신호 처리로 넘어가는 순간 그 강점을 못 쓰게 된 겁니다.

야마하 DX7. 3년 만에 20만 대가 팔린 기계입니다

야마하 DX7. 3년 만에 20만 대가 팔린 기계입니다 / 출처: Finnianhughes101 /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⑧ 정리하면 네 가지가 겹쳤다 🧩

"일본이 잘해서"로는 설명이 안 됩니다. 조건 넷이 겹친 쪽에 가깝습니다.

🔹 출신이 달랐다 — 연구소가 아니라 수리점과 나이트클럽. 처음부터 고치는 사람과 파는 사람의 감각이었습니다

🔹 1966년에 판을 열었다 — 경쟁사끼리 기술을 공개해서 해외 특허를 막았습니다. 개별 회사보다 바닥이 먼저였어요

🔹 다른 손님을 봤다 — 미국은 프로, 일본은 아마추어. 시장의 아래쪽을 가져갔고 10년 뒤에 위쪽이 따라왔습니다

🔹 환율과 클러스터 — 싸게 만들 수 있었고, 하마마쓰에 이미 악기 만드는 동네가 있었습니다

어느 하나만으로는 안 됐을 겁니다. 싸게 만들 수 있어도 특허가 막혀 있었으면 못 만들었고, 기술을 쓸 수 있어도 클러스터가 없었으면 원가가 안 맞았을 테니까요.

⑨ 그래서 지금은 어떤가 🕰️

마지막으로 현재 이야기를 해야 공평합니다. 위의 조건 중 지금까지 남아 있는 건 하나뿐입니다.

🔹 환율 — 그때의 유리함은 없습니다

🔹 특허 구멍 — 없어진 지 오래입니다

🔹 아마추어 시장의 독점 — 지금 처음 신디를 만지는 사람은 대개 소프트웨어로 시작합니다. 그쪽은 미국·유럽 회사가 강합니다

🔹 제조 클러스터 — 이건 남아 있습니다. 축적된 설계 자산과 함께요

그래서 지금의 일본 회사들이 파는 것은 새 조건이 아니라 축적입니다. 50년치 설계와 소리 라이브러리, 그리고 "이 브랜드 것은 어디에 꽂아도 작동한다"는 신뢰요.

그게 약한 자산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다만 처음 판을 뒤집은 힘과 지금 자리를 지키는 힘이 다른 종류라는 건 짚어둘 만합니다. 앞의 것은 제도와 환율이 만들어준 기회였고, 뒤의 것은 그 기회로 쌓아올린 결과물입니다.

자주 나오는 질문

Q. 그럼 미국 회사들은 왜 못 따라갔나요?

A. 기술이 없어서는 아니었습니다. 가장 큰 요인은 전환 비용이었어요. 아날로그 회로로 성공한 회사는 그 설계 인력, 그 생산 설비, 그 부품 공급망을 갖고 있습니다. 디지털로 가려면 그걸 거의 다 버려야 합니다. 이미 잘하고 있는 회사일수록 버리기가 어렵습니다. 그리고 그 사이에 가격 경쟁이 붙어서 버틸 시간도 없었습니다.

Q. 지금 일본 회사 제품을 사는 게 여전히 합리적인가요?

A. 용도에 따릅니다. 하드웨어를 여러 기기와 물려 쓸 생각이면 호환성과 내구성 쪽에서 여전히 장점이 있습니다. 반대로 소프트웨어 중심으로 작업하면 그 장점이 별로 의미가 없고요. 다만 중고로 돌아다니는 90년대 일본제 기기들이 아직 작동한다는 사실 자체가, 그때의 설계 방침이 어땠는지를 보여주긴 합니다.

Q. 야마하는 왜 처음부터 컸나요?

A. 야마하는 신디사이저 회사로 시작한 게 아닙니다. 오르간과 피아노를 만들던 회사가 전자악기로 넘어온 경우예요. 그래서 롤랜드나 코르그와는 출발선 자체가 달랐습니다. 하마마쓰 클러스터의 중심에 있던 것도 야마하고요. 롤랜드가 창업 초기에 국내를 피해 수출로 간 이유가 바로 이 회사들 때문이었습니다.

Q. 지금 새로 신디사이저 회사를 만든다면 어디가 유리할까요?

A. 답하기 어려운 질문입니다만, 최근 흐름을 보면 하드웨어 제조 자체의 진입 장벽이 많이 낮아졌습니다. 소량 생산이 가능해졌고, 부품은 세계 어디서든 구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소규모 회사들이 흥미로운 기계를 내놓고 있고요. 다만 그때의 일본 회사들이 가졌던 가격 경쟁력과 유통망은 지금 누구도 쉽게 못 만듭니다. 조건이 통째로 달라진 셈입니다.

마무리

스튜디오를 다시 둘러봅니다. 롤랜드, 코르그, 야마하.

이 이름들이 거기 있는 이유는 결국 1946년 규슈에서 시계를 고치던 열여섯 살과, 1962년 도쿄에서 클럽을 하던 사장과, 1966년 1월에 나온 책 두 권으로 이어집니다.

기술 이야기라기보다 조건 이야기예요. 누가 더 똑똑했느냐가 아니라, 어떤 조건이 겹친 자리에 누가 서 있었느냐에 가깝습니다.

그리고 조건은 바뀝니다. 지금 시장에서 벌어지는 일도 30년쯤 지나면 비슷하게 정리되겠죠. 그때 이름이 남아 있을 회사가 어디일지는, 지금 제일 잘하는 회사가 아니라 다음 전환을 넘어간 회사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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