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가 서로 가려질 때 — EQ로 자리 만들기

트랙을 하나씩 솔로로 들어보면 다 괜찮습니다. 킥도 단단하고 베이스도 두툼하고 보컬도 잘 들립니다. 그런데 전부 켜면 뭉칩니다.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으니 일단 보컬 페이더를 올립니다. 그러면 보컬은 커지는데 곡 전체가 시끄러워지고, 정작 가사는 여전히 안 들립니다.

이건 음량 문제가 아닙니다. 자리 문제입니다. 여러 소리가 같은 주파수 대역을 동시에 차지하고 있으면, 볼륨을 아무리 올려도 서로를 가립니다. 이럴 때 쓰는 도구가 EQ입니다. 오늘은 EQ를 "소리를 예쁘게 만드는 장치"가 아니라 "트랙마다 자리를 나눠주는 장치"로 놓고 다시 보겠습니다.

① EQ가 실제로 하는 일

EQ(이퀄라이저)는 이름이 거창하지만 하는 일은 단순합니다. 주파수 대역별 음량 조절기입니다. 페이더가 트랙 전체의 음량을 한 번에 올리고 내린다면, EQ는 "저음만 조금 줄이고 중음은 그대로 두고 고음만 살짝 올린다"처럼 대역별로 따로 조절합니다.

여기서 개념 하나만 잡고 가겠습니다. 모든 소리는 여러 주파수가 겹쳐서 만들어집니다. 베이스 기타 한 음에도 낮은 근음뿐 아니라 그 위로 배음이 잔뜩 쌓여 있습니다. 그래서 "베이스는 저음 악기"라는 말은 절반만 맞습니다. 베이스의 존재감은 저음에서 나옵니다. 그런데 베이스가 들리느냐 마느냐는 중음대의 배음이 결정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사실이 중요한 이유는 이렇습니다. 악기는 저마다 넓은 대역에 걸쳐 있고, 그래서 서로 겹칩니다. 겹치는 자리를 정리하는 것이 EQ의 본업입니다.

② 파라메터 네 개만 알면 됩니다

어떤 EQ를 열어도 만지는 파라메터는 결국 네 개입니다.

🔹 주파수(Frequency)

어느 지점을 건드릴지 정합니다. 단위는 Hz입니다. 100Hz는 낮은 쪽, 1kHz는 중간, 10kHz는 높은 쪽입니다. 이 숫자를 외울 필요는 없고, 대신 귀로 찾는 방법을 익히면 됩니다. 뒤에 적겠습니다.

🔹 게인(Gain)

그 지점을 얼마나 올리고 내릴지입니다. 단위는 dB입니다. 플러스면 부스트, 마이너스면 컷입니다. 초보자는 대체로 너무 많이 움직입니다. ±3dB만 해도 충분히 크게 바뀝니다.

🔹 Q(큐)

건드리는 폭입니다. Q가 크면 좁고 뾰족하게, Q가 작으면 넓고 완만하게 작동합니다. 좁게 파면 특정 문제만 도려내고, 넓게 건드리면 악기의 성격 자체가 바뀝니다. 문제를 없앨 때는 좁게, 톤을 만들 때는 넓게가 기본입니다.

🔹 필터 타입

가장 흔한 건 벨(Bell)입니다. 지정한 주파수를 중심으로 봉우리나 골짜기를 만듭니다. 그 밖에 하이패스·로우패스(한쪽을 통째로 잘라냄), 셸프(어느 지점 위나 아래를 전부 올리거나 내림)가 있습니다. 실무에서는 이 네 가지면 거의 다 됩니다.

③ 부스트보다 컷이 먼저입니다

EQ를 처음 만지면 손이 자꾸 위로 갑니다. 보컬이 답답하니 고음을 올리고, 킥이 약하니 저음을 올립니다. 그런데 이 방향은 금방 막힙니다. 모든 트랙에서 뭔가를 올리면 전체 음량만 커지고 관계는 그대로거든요.

빼는 쪽이 먼저입니다.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 자리는 유한합니다. 보컬이 잘 들리게 하고 싶으면 보컬을 키우는 것보다 보컬이 앉을 대역을 다른 악기에서 비워주는 쪽이 훨씬 잘 듣습니다. 기타에서 2~4kHz를 2dB 정도 덜어내면 보컬을 건드리지 않고도 가사가 또렷해집니다.

둘째, 부스트는 없는 걸 만들어내지 못합니다. 애초에 그 대역에 정보가 없는 소리를 올리면 잡음만 커집니다. 반대로 컷은 이미 있는 것을 정리하는 일이라 실패가 적습니다.

💡 정리하면 — 안 들리면 그 트랙을 키우기 전에, 그 트랙을 가리고 있는 다른 트랙을 먼저 찾으세요.

④ 문제 주파수를 귀로 찾는 법

숫자를 외우는 것보다 이 방법이 훨씬 오래 갑니다. 부스트해서 찾고, 컷으로 고칩니다.

1. 벨 필터를 하나 만들고 게인을 크게 올립니다. +10dB 정도로 과하게 올려도 됩니다.
2. Q를 좁게 잡습니다.
3. 그 상태로 주파수를 좌우로 천천히 쓸어봅니다.
4. 유난히 거슬리거나 웅웅거리는 지점이 나옵니다. 귀가 찡그려지는 자리입니다.
5. 그 자리를 찾았으면 게인을 마이너스로 돌립니다. 보통 -2~-4dB면 충분합니다.

이 과정을 스윕(sweep)이라고 부릅니다. 처음에는 한 트랙에 5분씩 걸리지만, 몇 곡만 해보면 소리를 듣자마자 "이건 300Hz 쪽이겠다" 하는 감이 생깁니다. 수치는 정답이 아니라 출발점입니다. 귀로 익히는 게 목적입니다.

🔹 자주 걸리는 자리 몇 군데

200~400Hz는 뭉침과 탁함이 모이는 자리입니다. 트랙이 많아질수록 여기가 먼저 포화됩니다. 2~5kHz는 존재감과 명료도가 사는 자리인데, 동시에 귀가 가장 예민한 대역이라 과하면 금방 피곤해집니다. 6~10kHz는 치찰음("스" "츠" 소리)과 공기감이 함께 있는 자리입니다.

다만 이 숫자들은 지도일 뿐입니다. 같은 300Hz라도 어떤 곡에서는 따뜻함이고 어떤 곡에서는 진흙입니다.

⑤ 마스킹 — 실제로 자리를 나누는 작업

두 소리가 같은 대역에서 다투는 현상을 마스킹(masking)이라고 합니다. 믹스가 뭉치는 원인 대부분이 이겁니다. 대표적인 세 쌍만 짚겠습니다.

🔹 킥과 베이스

가장 흔한 충돌입니다. 둘 다 저음 악기니까요. 해법은 역할을 나누는 것입니다. 킥에 60Hz 부근을 주고 베이스에서 그 근처를 살짝 덜어내거나, 반대로 베이스에 저음을 주고 킥은 어택(2~4kHz의 딱 하는 소리)으로 존재감을 챙기게 합니다. 어느 쪽이 맞다기보다 한 곡 안에서 하나만 고르는 것이 핵심입니다. 둘 다 저음을 다 가지려 하면 둘 다 흐려집니다.

🔹 보컬과 기타(또는 신스 패드)

반주가 두꺼우면 보컬이 파묻힙니다. 보컬 대역을 스윕으로 찾은 다음, 그 대역을 반주 쪽에서 좁게 덜어냅니다. 보컬 트랙은 되도록 건드리지 않는 편이 자연스럽습니다.

🔹 스네어와 하이햇

둘 다 고음이 밝은 악기라 자주 겹칩니다. 하이햇은 보통 아래쪽을 과감하게 잘라도 됩니다. 하이햇의 저음은 음악적 정보가 거의 없고 자리만 차지합니다.

⑥ 하이패스 필터의 함정

"필요 없는 저음은 다 자르세요"는 인터넷에서 가장 많이 도는 조언이고, 절반은 맞습니다. 보컬 마이크가 잡은 30Hz 근처의 저음은 대부분 에어컨 소리나 발소리라 잘라내는 게 맞습니다.

문제는 습관적으로 모든 트랙에 하이패스를 걸 때입니다. 트랙 20개에 전부 120Hz 하이패스를 걸면, 곡에서 두께가 통째로 빠집니다. 개별 트랙은 깨끗해졌는데 합쳤을 때 앙상해지는 전형적인 경우입니다.

권하는 방식은 이렇습니다. 하이패스를 건 상태와 끈 상태를 전체 믹스에서 번갈아 들어보세요. 개별 트랙 솔로로 판단하면 거의 항상 "자르는 게 낫다"는 결론이 납니다. 판단은 항상 전체에서 해야 합니다.

⑦ 정적 EQ와 다이내믹 EQ

지금까지 이야기한 건 전부 정적 EQ입니다. 한 번 설정하면 곡 내내 같은 양으로 작동합니다.

그런데 문제가 가끔만 생기는 경우가 있습니다. 보컬이 특정 음을 부를 때만 300Hz가 울린다든가, 후렴에서만 기타가 보컬을 가린다든가. 이걸 정적 EQ로 잡으려면 문제가 없는 구간에서도 계속 깎아야 하고, 그러면 목소리가 얇아집니다.

다이내믹 EQ는 이 상황을 위한 도구입니다. 지정한 대역이 일정 수준을 넘을 때만 깎고, 평소에는 아무 일도 하지 않습니다. 컴프레서와 EQ를 합쳐놓은 물건이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빠릅니다.

판단 기준은 간단합니다. 문제가 항상 있으면 정적 EQ, 가끔 있으면 다이내믹 EQ.

⑧ 어떤 EQ를 쓸까

결론부터 말하면 DAW 기본 EQ로도 위 내용은 전부 됩니다. 로직의 Channel EQ, 에이블톤의 EQ Eight, 큐베이스의 Frequency 모두 스윕이 됩니다. 다이내믹 EQ도 되거나 그에 준하는 기능이 붙어 있고요. 유료 EQ가 소리를 더 좋게 만들어주지는 않습니다. 다만 작업 속도를 확실히 바꿔줍니다.

🔹 FabFilter Pro-Q 4 — 179달러

사실상 업계 표준입니다. 4세대에서 24개 밴드 전부에 다이내믹 모드가 열렸고, 스펙트럴 다이내믹스가 추가됐습니다. EQ 커브를 마우스로 한 번에 그리는 EQ Sketch, 게인은 그대로 두고 위상만 조정하는 올패스 필터, 주파수를 음이름으로 보여주는 피아노 디스플레이도 들어갔습니다. 값이 비싸지만 화면이 직관적이라 스윕 속도가 눈에 띄게 빨라집니다.

🔹 TDR Nova — 무료

무료 중에서는 이게 답입니다. 4밴드 병렬 구조에 다이내믹 EQ가 들어 있어서, 위에서 말한 "가끔 생기는 문제"를 무료로 처리할 수 있습니다. 화면이 예쁘지는 않지만 기능만 보면 유료 제품과 겨룹니다.

🔹 MeldaProduction MEqualizer — 무료

6밴드 파라메트릭에 리니어 페이즈 모드까지 있습니다. 평범한 대역 정리용으로 무난합니다.

🔹 TDR VOS SlickEQ — 무료

정밀 수술보다 색깔을 입히는 쪽입니다. 아날로그풍 톤 메이킹에 씁니다.

돈을 쓰기 전에 먼저 확인할 것은 도구가 아니라 판단 순서입니다. 컷 먼저, 전체에서 판단, 문제 대역은 스윕으로. 이게 안 되면 179달러짜리를 사도 결과는 같습니다.

🙋 자주 나오는 질문

Q. EQ를 컴프레서 앞에 걸어야 하나요, 뒤에 걸어야 하나요?

문제를 없애는 EQ는 컴프레서 앞이 낫습니다. 거슬리는 대역이 남아 있으면 컴프레서가 그 대역에 반응해서 엉뚱하게 눌러버리거든요. 반대로 톤을 만드는 EQ는 뒤에 거는 편이 결과가 예측 가능합니다.

Q. 몇 dB까지 깎아도 되나요?

정해진 한계는 없습니다. 다만 -6dB를 넘게 깎아야 겨우 나아진다면, EQ가 아니라 소스나 녹음에 문제가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 경우 다시 녹음하거나 다른 샘플을 쓰는 게 빠릅니다.

Q. 리니어 페이즈 EQ를 써야 하나요?

대부분 필요 없습니다. 리니어 페이즈는 위상을 틀지 않는 대신 프리링잉이라는 다른 부작용과 지연이 생깁니다. 여러 마이크로 딴 드럼처럼 위상이 예민한 경우에만 고려하면 충분합니다.

Q. 프리셋을 써도 되나요?

출발점으로는 괜찮습니다. 다만 "보컬용 프리셋"이 내 보컬에 맞을 확률은 낮습니다. 프리셋을 걸고 나서 반드시 각 밴드를 하나씩 껐다 켜보세요. 껐을 때 더 나으면 그 밴드는 필요 없는 겁니다.

Q. 헤드폰으로 EQ를 해도 되나요?

됩니다. 다만 헤드폰은 저음 판단이 어렵습니다. 저음 쪽 결정은 가능하면 스피커에서 한 번 더 확인하고, 그것도 어려우면 이미 알고 있는 곡 몇 개를 같은 헤드폰으로 들어보고 기준을 잡으세요.

📌 한 줄 압축

EQ는 소리를 예쁘게 만드는 장치가 아니라 트랙마다 자리를 나눠주는 장치입니다. 안 들리는 트랙을 키우기 전에, 그 트랙을 가리고 있는 다른 트랙에서 먼저 덜어내세요.

여러분은 어느 대역에서 제일 자주 막히시나요? 저는 아직도 200Hz 근처에서 매번 고민합니다. 댓글로 알려주시면 같이 이야기해봐요. 도움이 되셨다면 공감과 이웃 추가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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