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스튜디오에 가도 한 대는 있는 마이크 — 노이만 U 87 이야기
레코딩 스튜디오 사진을 떠올려 보세요. 보컬 부스 안에 팝필터 뒤로 서 있는 은색 마이크. 위가 살짝 넓고 아래로 갈수록 가늘어지는 몸통에, 촘촘한 격자 헤드. 어느 나라 어느 스튜디오 사진이든 그 마이크가 있습니다. 노이만 U 87이에요.
1967년에 나와서 지금도 팔리고 있고, 60년 가까이 "스튜디오 마이크"라는 말의 이미지 자체가 된 물건입니다. 이런 기재가 어떻게 생겼고 왜 안 없어지는지, 그 이야기를 해보려고요.

1971년 9월 제조된 U 87. 초기형은 이렇게 은색 무광 몸통입니다 / 출처: PJ / CC BY-SA 3.0 via Wikimedia Commons
① 베를린의 마이크 회사 🏭
노이만은 회사 이름이자 사람 이름입니다. 게오르크 노이만이라는 엔지니어가 1928년 베를린에 세운 회사예요. 그해에 낸 첫 제품이 CMV 3라는 콘덴서 마이크였는데, 크기가 커서 "병(bottle)"이라는 별명으로 불렸습니다. 1930년대 독일 방송과 정치 연설 영상에 서 있는 그 큰 마이크가 이겁니다.
전쟁이 끝나고 1949년에 나온 게 U 47입니다. 스위치 하나로 지향 패턴을 바꿀 수 있는 마이크였고, 진공관이 들어간 두툼한 소리 덕에 1950~60년대 팝과 재즈 보컬의 표준이 됐어요. 애비로드 스튜디오의 비틀즈 보컬에 쓰인 마이크로도 유명합니다. 지금 중고가는 자동차 값입니다.

U 47 (1949년). U 87의 할아버지뻘 되는 진공관 마이크 / 출처: Goldfinger / CC BY-SA 3.0 RS via Wikimedia Commons
1960년에는 U 67이 나옵니다. U 47의 후속으로, 새로 설계한 K 67이라는 캡슐이 들어갔어요. 이 캡슐이 중요합니다. 지금 팔리는 U 87 Ai 안에 들어 있는 캡슐이 바로 이 K 67의 직계거든요. 그러니까 U 87의 "귀"는 1960년에 이미 완성돼 있었던 셈입니다.
② 진공관을 버리다 — 1967년 ⚡
1960년대 중반, 트랜지스터가 오디오 기기에 본격적으로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진공관 마이크는 소리는 좋지만 문제가 많았어요. 마이크마다 전용 전원 장치가 따로 필요하고, 케이블도 굵은 다핀 케이블이고, 예열 시간이 걸리고, 진공관은 수명이 있습니다. 방송국처럼 마이크를 수십 개 굴리는 곳에서는 골치였죠.
노이만은 1966년에 노르웨이 방송국 NRK와 일하면서 새 방식을 만듭니다. 마이크 케이블의 신호선 두 가닥에 직류 전압을 실어 보내서 마이크에 전원을 공급하는 방법. 지금 우리가 오디오 인터페이스에서 켜는 +48V 팬텀 파워가 이때 생겼습니다. 왜 하필 48V였냐면, NRK 스튜디오에 비상 조명용으로 48V 전원이 이미 깔려 있었기 때문이에요. 그걸 그대로 갖다 쓴 게 표준이 됐습니다.
그리고 1967년, 이 팬텀 파워로 동작하는 트랜지스터 마이크 시리즈가 나옵니다. 소형 마이크 KM 84와 함께 나온 대형 진동판 마이크가 U 87입니다. U 67의 소리를 진공관 없이 내는 게 목표였어요. 캡슐은 K 67을 조금 손본 K 87을 썼고, 회로는 FET 트랜지스터로 갔습니다. 팬텀 파워가 없는 곳을 위해 22.5V 배터리 두 개를 넣는 배터리 칸도 있었습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습니다. 전원 장치 없이 케이블 하나로 되고, 예열도 없고, 고장도 적은데 소리는 U 67에 가까웠으니까요. 1970년대 중반이 되면 세계의 주요 스튜디오에 U 87이 없는 곳이 없었습니다.
③ 안에 뭐가 들어 있나 🔍
U 87의 캡슐은 진동판이 두 장입니다. 앞뒤로 한 장씩, 가운데 금속판(백플레이트)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보고 있어요. 진동판 지름은 1인치급(약 25mm)이라 "라지 다이어프램"이라고 부릅니다.
두 장이 있는 이유는 지향 패턴을 바꾸기 위해서입니다. 진동판 한 장만 있으면 한쪽에서 오는 소리만 잘 받는 카디오이드가 됩니다. 앞뒤 두 장의 신호를 더하면 모든 방향을 똑같이 받는 무지향성(옴니), 빼면 앞뒤만 받고 옆은 안 받는 8자(피겨 에이트)가 돼요. 몸통 앞의 스위치가 이 조합을 바꿉니다. 그래서 U 87 한 대로 보컬(카디오이드), 룸 앰비언스(옴니), 두 사람이 마주 보고 부르는 듀엣(8자)이 다 됩니다.
뒤쪽에는 스위치가 두 개 더 있습니다. −10dB 패드는 드럼이나 기타 앰프처럼 큰 소리를 받을 때 회로가 찌그러지지 않게 입력을 줄이고, 로우컷은 발소리나 팝 노이즈 같은 낮은 소리를 걸러냅니다. 스위치 다섯 칸으로 끝나는 단순한 마이크예요. 그 단순함이 60년을 버틴 이유 중 하나입니다.
④ 1986년, Ai가 붙다 🔧
1986년에 회로를 손본 U 87 A가 나옵니다. 배터리 칸을 없애고 팬텀 파워 전용으로 바꿨고, 캡슐은 K 87 대신 원래의 K 67로 돌아갔어요. XLR 커넥터가 달린 버전에 소문자 i가 붙어서 지금 파는 이름이 U 87 Ai입니다.
수치로는 자체 잡음이 3dB 낮아지고 감도가 올라갔습니다. 대신 받아낼 수 있는 최대 음압은 5dB쯤 내려갔어요. 조용한 소리를 더 깨끗하게 받는 쪽으로 튜닝된 겁니다.
여기서 빈티지 논쟁이 시작됩니다. 1967~86년의 초기형(U 87 또는 U 87i라고 부릅니다)과 Ai는 소리가 조금 다릅니다. 초기형이 조금 더 부드럽고 중역이 두껍다는 사람이 많고, Ai는 조금 더 밝고 선명하다는 평이 많아요. 어느 쪽이 낫다기보다 취향과 용도 차이인데, 초기형 중고가가 신품 Ai보다 비싸게 거래되는 걸 보면 시장은 초기형 쪽에 손을 들어주는 것 같습니다.

왼쪽이 U 87, 오른쪽이 U 47. 스튜디오에서 이 둘이 나란히 있는 풍경은 흔합니다 / 출처: Ville Hyvönen / CC BY-SA 2.0 via Wikimedia Commons
⑤ 소리의 성격 — 무난함이라는 강점 🎙️
U 87의 소리를 한마디로 하면 평탄한 중역에 살짝 얹힌 존재감입니다. 극단적으로 밝지도 어둡지도 않고, 특정 대역이 튀지도 않아요. 그런데 밋밋하냐면 그렇지도 않습니다. 보컬을 받으면 앞으로 나오는 느낌이 있고, 어떤 소스를 받아도 "녹음된 소리"답게 정리돼서 나옵니다.
이게 스튜디오에서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스튜디오는 오늘 누가 올지 모릅니다. 낮은 남자 목소리일 수도, 높은 여자 목소리일 수도, 색소폰일 수도, 첼로일 수도 있어요. 그때마다 마이크를 고민하는 대신 일단 87을 세우면 80점은 나온다는 신뢰가 있는 겁니다. 특정 소스에 100점인 마이크보다 모든 소스에 80점인 마이크가 스튜디오에는 더 필요했어요.
그래서 U 87은 보컬 마이크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어디에나 쓰였습니다. 피아노에 두 대, 드럼 오버헤드에 두 대, 기타 앰프 앞에 한 대, 현악 섹션 스팟 마이크. 방송에서도 그렇습니다. 미국 공영 라디오 NPR의 목소리가 U 87이고, 라디오 DJ 케이시 케이섬이 쓰던 마이크도 U 87이었습니다.
⑥ 이 마이크로 녹음된 곡들 🎧
위키피디아에 U 87로 녹음됐다고 기록된 곡들 중에서 공식 채널에 있는 것만 골랐습니다. 장르가 얼마나 제각각인지 보세요.
▶ Neil Young - Heart of Gold — 컨트리 록의 어쿠스틱한 목소리
▶ Aerosmith - Walk This Way — 하드 록 보컬
▶ Soft Cell - Tainted Love — 신스팝
▶ Talking Heads - Road to Nowhere — 뉴웨이브
컨트리, 하드 록, 신스팝, 뉴웨이브. 같은 마이크입니다. 이 마이크의 성격이 곡을 지배하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해요. 마이크가 소리를 만드는 게 아니라 소리를 통과시키는 쪽에 가깝습니다.
⑦ 지금 사도 되는 마이크인가 💭
홈스튜디오 입장에서 솔직하게 써보면, U 87 Ai는 비쌉니다. 신품 가격은 노이만 공식 사이트나 대리점에서 확인하시면 되는데, 오디오 인터페이스와 모니터 스피커를 합친 것보다 비싼 경우가 대부분이에요.
그래서 이 마이크를 노리는 홈스튜디오에는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마이크보다 방이 먼저입니다. 처리 안 된 방에서 U 87로 녹음하면 방 울림이 그대로 들어와요. 오히려 좋은 마이크일수록 방의 문제를 더 정확하게 잡아냅니다. 흡음이 되어 있고 모니터 환경이 잡힌 다음에야 마이크 차이가 결과로 나타납니다.
그 단계가 됐다면 U 87 Ai는 후회 없는 선택입니다. 유행을 안 타고, 중고로 팔 때 값이 안 떨어지고, 어떤 소스에도 쓸 수 있으니까요. 다만 같은 회사에서 훨씬 싼 TLM 103이나 TLM 102도 나오고, 다른 회사들이 87 스타일로 만든 마이크도 많습니다. 소리가 똑같지는 않지만 홈스튜디오 규모에서는 그 차이보다 방과 프리앰프와 가창력의 차이가 훨씬 큽니다.
⑧ Q&A 💬
Q. 빈티지 U 87과 Ai 중 어느 쪽을 사야 하나요?
A. 처음 사는 거라면 Ai입니다. 빈티지는 상태 편차가 크고, 캡슐이 노후되어 있거나 수리 이력이 있는 개체가 많아서 직접 들어보고 살 수 있는 경우가 아니면 위험해요. Ai는 신품이라 상태 문제가 없고 보증이 있습니다.
Q. 팬텀 파워를 안 켜면 어떻게 되나요?
A. 소리가 안 나옵니다. 콘덴서 마이크는 전원이 있어야 동작해요. 오디오 인터페이스의 48V 버튼을 켜면 됩니다. 다이나믹 마이크나 리본 마이크에 잘못 켜도 대부분 괜찮지만, 오래된 리본 마이크는 손상될 수 있으니 확인하고 켜세요.
Q. 왜 U 87은 이렇게 오래 팔리나요?
A. 바꿀 이유가 없어서입니다. 1986년 이후 기본 설계가 안 바뀌었는데, 그건 노이만이 게으른 게 아니라 이 설계가 이미 목표에 도달했다는 뜻이에요. 그리고 전 세계 엔지니어가 이 소리를 기준으로 삼고 있어서, 바꾸면 오히려 기준이 흔들립니다.
Q. 8자 패턴은 언제 쓰나요?
A. 두 사람이 마이크 앞뒤에 서서 동시에 녹음할 때, 그리고 미드/사이드 녹음의 사이드 마이크로 쓸 때입니다. 옆에서 오는 소리를 거의 안 받아서 옆에 있는 악기를 피하고 싶을 때도 씁니다.
Q. U 87을 저렴하게 흉내 낸 마이크로도 비슷한 결과가 나오나요?
A. 캡슐 설계가 같은 계열이라 방향성은 비슷합니다. 다만 캡슐 가공 정밀도와 회로 부품에서 차이가 나고, 그 차이는 조용한 소스나 고역의 질감에서 드러나요. 홈스튜디오에서 데모를 만드는 용도라면 충분하고, 그 마이크로 녹음한 보컬이 방송에 나가도 아무도 모릅니다.
마무리
U 87은 특별한 소리를 내는 마이크가 아닙니다. 특별하게 아무 소리도 안 내는 마이크예요. 앞에 있는 것을 그대로 받아서 조금 더 듣기 좋게 정리해 주는 것. 1967년에 그걸 해냈고, 그 뒤로 바꿀 필요가 없었습니다.
스튜디오 사진마다 서 있는 그 은색 마이크는 그래서 유행이 아니라 기준입니다. 그리고 기준은 잘 안 바뀝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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